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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미나토 가나에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어떤 일이든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딴 나라 이야기로 느껴질 때가 있다. 오랜 세월 지속된 내전으로 피폐해진 삶의 터전, 깨끗한 물이 없어서 흙탕물을 마시고, 먹을 게 부족해서 굶어죽는 아이들이 지구 반대편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눈을 질끈 감아버리게 만들 만큼 처참하다 느끼지만, 그 모든 것은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이지 몸으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내가 경험한 어려움,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의 영역이 그렇다.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게 된다는 슬픔, 언젠가는 혼자가 될 거라는 두려움도 일상의 느낌으로 간직하게 된다. 그 느낌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어느 때는 더 열심히 의욕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또 어느 때는 내가 가장 사랑한 외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떠났던 것처럼 내 가까운 사람들이 언젠가는 하나 둘 나를 떠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미치도록 슬프고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고 싶어 하는 두 소녀가 등장하는 미나토 가나에 소설 《소녀(2010.6.4. 은행나무)》를 읽으면서 참 철없는 아이들도 다 있구나, 생각했더랬다.
어느 소녀의 유서로부터 시작하는 소설 《소녀》는 아쓰코와 유키, 두 소녀의 오해와 우정을 다루었다. 그리고 두 소녀와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죽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각자의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쓰코와 유키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믿었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서먹한 관계가 된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을 직접 보고 싶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름 방학을 맞아 아쓰코는 노인요양센터로, 유키는 소아과 병동으로 자원봉사를 나간다.
아쓰코와 유키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녀》의 이야기 흐름은 단순해 보인다. 처음에는 죽음에 대해 궁금해 하는 두 소녀의 서로 다른 생각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타래가 엉켜 풀기 어렵게 된 것과 같이 얽히고 뒤틀린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 이야기가 두 소녀의 이야기와 일직선으로 맞닿게 되었을 때 반전이 일어나는 등 이보다 더 복잡한 이야기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것만 같이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거나 죽음을 마음에 품어봤다고 해서 삶과 다른 죽음에 대해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을 유행처럼 번지는 스타일쯤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소녀》는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읽고 두 번째 읽은 작품이다. 배배꼬아놓은 어지러운 이야기이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풀리고 마는 신기한 글을 쓰는 작가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 이 또한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의 특징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