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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남장 여자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너무 오래 사용해서 닳고 닳은 걸레처럼 더 이상 우려먹을 것도 없고, 빼먹을 것 없는 진부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설렘에 살짝 당황하기까지 한 나는, 이미 종영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보지 않았던 것까지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낭패가 있나!
가난한 집안 살림에 아픈 동생을 돌봐야하고 가장 역할까지 해야 했기에 남장을 하고 남성의 일을 하는 여인 김 윤희, 그녀가 이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2009.7.27. 파란미디어)》의 히로인 여주인공이다. 그리고 십대소녀처럼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 장본인이자 노론의 실세 중의 실세인 좌상 대감댁 도령 이 선준, 자신이 알고 있는 윤리와 예의 범주에서 어긋나는 일은 생각하지도 쳐다보지도 않는 바른 생활 사나이가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또한 호색한 구 용하와 반항아 문 재신까지 포함하면 훗날 ‘반궁의 잘금 4인방’으로 불리게 되는 주인공 네 명이 모두 모이는 셈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 네 사람의 소개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매력을 하나씩 읊어보자. 우선 금녀의 공간 성균관에 들어간 윤희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까 봐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 그러나 선준 앞에서만큼은 감정이 의식을 앞서는지 무의식적으로 여인의 행동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당황한다. 선준은 남장을 한 윤희에게 기울어가는 마음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 홀로 고뇌에 빠진다.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다고는 하나 분명 관례를 치른 사내이니 말이다. 소설에서는 윤희와 선준의 서로를 향해 가는 마음이 스릴 있지만 아름답게 그리고 짜릿하게 그려진다. 두 사람의 애정 전선에 도움을 주거나 혹은 방해를 주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한 방을 사용하는 재신과 윤희의 정체를 의심하는 용하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윤희, 선준, 재신과 용하는 끈끈한 우정으로 한 마음이 되어 간다. 윤희와 선준의 아슬아슬한 러브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선준 못지않게 멋진 캐릭터인 재신과 용하와의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도 무척 흥미롭다.
그리고 성균관 유생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도 이색적인 매력이다. 현대로 말하자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유생들, 엄청난 학습량에 시달리는 유생들 그리고 성균관에서 시행되는 각종 행사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 속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져있는 네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모습대로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들의 청춘이 부러울 만큼.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후속작인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규장각에서 벌어지는 ‘잘금 4인방’의 이야기라고 한다. 정조까지 윤희가 여자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