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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김기협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월
평점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라는 부제가 달린 《아흔 개의 봄(2011.1.20. 서해문집)》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표지 속 노인의 빛나는 미소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책을 열면서 어머니가 쓰러지신 후 모시는 것을 보며 주변에서 자신을 효자라고 여기는 데에 어색함을 표현하면서, 어머니가 쓰러지시기 전 자신과의 관계가 어떠했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시병일기를 쓰면서 어머니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아흔 개의 봄》을 읽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저자의 감정이 변하는 과정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2004년 늦은 가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와의 관계가 저자의 이야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1년하고도 몇 개월 전 즈음 손바닥에 큰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90세가 넘은 고령 탓인지 외할머니는 손바닥 상처 때문에 기억력조차 흐려지셨는데 갑자기 약해지신 모습을 뵈니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가 돌아가시는 건 아니겠지, 노심초사,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은 가족에게 뿐만 아니라 친지들에게도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그동안 외할머니와 나의 관계는 썩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할머니를 사랑하게 될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였기 때문에 약간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외할머니와의 화해를 이렇게 준비해 두셨구나, 라고 생각이 정리되면서 나의 외할머니 사랑은 시작되었다. 내가 외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더니 내게로 외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돌아오더라. 왜 더 일찍 이 사랑을 시작하지 못했나,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외할머니와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보냈던 1년 남짓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아흔 개의 봄》은 2008년 11월 24일부터 2010년 11월 22일까지 2년 간 어머니를 돌보면서 쓴 시병일기를 엮은 책이다. 시병일기에는 어머니의 상태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어머니와 저자의 불편했던 과거 시절도 기록되어 있다. 앞으로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며,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면서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과 스물세 살에 만나 서른두 살에 사별하셨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연에 관한 애틋함도 글 곳곳에 담겨 있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은 모두 어린애가 된다더니 저자의 어머니도 예외가 아니었다. 넘겨야 할 책장보다 넘긴 책장이 많아질수록 어머니와 아들의 친밀도가 깊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푸근했다.
저자는 시병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예상외의 회복 기미를 보이시는 데 고무되어 미국의 형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어머니 모습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병일기의 수혜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자 자신일 것이다. 시병일기를 쓰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깨우칠 수 있었으며 어머니와의 관계도 더없이 가까워졌으니 말이다. 나는 저자의 어머니이자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였던 이남덕 선생은 알지 못하지만, 시병일기를 읽으면서 선생의 회복이 진심으로 기뻤으며 저자가 어머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책을 읽는 중에 외할머니가 자꾸만 떠올라 눈시울을 붉혀야했던 것만 빼면 말이다.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셨을 때 나도 매일 뽀뽀 해 드렸었는데,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