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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메리칸 러스트(2010.7.7. 올)》는 미국의 쇠락한 철강 마을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생명만 유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의 무대인 부엘은 미국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철강 산업의 호황으로 한 때 황금기를 누렸던 마을이다. 그런데 철강 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마을은 인적이 끊긴 한적한 곳으로 전락하고 마을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은 후 절망과 좌절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밀려난 후 버려져 쓸모없어진 공장과 마찬가지로 활력을 잃어가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그 중에서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두 청년 아이작과 빌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소설은 아이작과 빌리가 뜻하지 않게 살인 사건에 연루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빌리를 돕기 위한 것이었지만 아이작은 사람을 죽였다.
《아메리칸 러스트》의 두 주인공 아이작과 빌리는 이십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활달하고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 때 잘나가던 풋볼 선수였던 빌리는 장학금과 함께 대학교 입학을 제안 받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어머니와 함께 트레일러에서 사슴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했다. 천재 소년 아이작은 예일대에 간 누나 대신 아버지의 병수발을 도맡아하며 대학교 진학을 미루며 고향을 떠나야 할 시간, 아버지 곁을 떠나야 할 순간을 결정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잘난 사람들은 외지로 모두 떠나버려 텅 비어버린 마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듯 아이작과 빌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만 같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뒤 아이작은 마을을 떠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빌리는 친구와 사랑했던 여자를 위해 살인 혐의를 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아메리칸 러스트》의 전개 상 살인사건이 이야기의 발단이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살인사건이 주된 이야기는 아니다. 두 주인공과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마을이 쇠락하면서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사람들이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하는 고백과도 같다. 두 주인공이 갖고 있는 상처가 무엇인지 알게 되며 가족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제각각의 상처 속에서 불운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살인 사건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면서 아이작의 누나와 아버지, 빌리의 어머니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찾아온다. 아이작과 빌리가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을 한 것과 같이 말이다.
요즘은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 소설을 읽을 때보다 씁쓸해 하면서 읽은 적이 더 많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된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실이 녹녹치 않기 때문일까. 《아메리칸 러스트》를 읽으면서도 줄곧 마음이 무거웠다. 성장의 뒤안길에서 잃어버린 게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화려하지도 않고 격정적이지도 않지만 독자를 사로잡는 노련미를 느낄 수 있었기에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좋은 작품을 통해 좋은 작가를 만나서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