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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은교는 욕망과 열망의 또 다른 이름』
죽음을 앞둔 예순아홉 살의 늙은 시인이 열일곱 살 어린 처녀를 사랑했노라 고백하는 글로 이 소설 《은교(2010.4.6. 문학동네)》는 시작된다. 예순아홉의 남자가 열일곱의 어린 처녀에게 품은 감정을 두고 사랑이 맞다, 고개 끄덕여줄 이가 과연 있을까. 늙은 시인은 미리 예상되는 이 문제를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p12)」는 문장으로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늙은 시인은 또한 자신의 제자인 서지우를 죽였다는 고백도 덧붙인다. 게다가 서지우는 죽어도 좋을 무가치한 인간이었으니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한다.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의미의 적요寂寥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주인공 늙은 시인에게 과연 적요했던 시간이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이 소설의 모든 사건의 도화선은 이적요 시인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욕망과 열망이다. 은교의 방문이 예고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잠잠하다가 갑자기 불이 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길과 같이 이적요 시인의 마음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해 가는지 이 소설의 전체에서 보여준다.
소설은 시인이 남긴 한 권의 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적요는 살아생전 세상에 적요라는 필명에 어울리는 시인으로 알려지기 위해 철저하고 치밀하게 자신의 실체를 감추었다. 자신이 쓴 글로 제자를 소설가로 등단하게 만들었으며, 십대 처녀를 마음에 품었고, 급기야 질투심에 사로잡혀 제자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 시인 자신은 반성도 하지 않고, 회한도 없다고 하지만 - 참회의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살았을 때는 자신이 쌓아온 탑이 허물어지는 꼴을 볼 수 없지만, 죽어서는 괜찮다는 심정인가. 비겁하다.
이적요 시인이 노트 한 권을 남긴 것과 같이 그의 제자 서지우 역시 한 권의 일기를 남겼다. 소설은 시인의 유언 집행을 맡은 Q 변호사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현재 시간을 보여주며, 나머지는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 작가의 일기를 오가며 은교와 두 남자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과거의 시간을 쫓는데 할애된다. 두 남자는 은교의 등장 전과 후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은교가 나타나기 전부터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으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소설은 은교가 나타난 후 두 남자의 숨겨진 욕망과 열망이 밖으로 표출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나는 사랑이란 감정이 낯설다. 사랑이 내게 찾아온 적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내 가슴이 사랑의 감정을 잊었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지. 그래서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부족했던가 보다. 소설 속 두 남자의 섬뜩하고도 소름 돋는 경쟁이 내겐 소모적인 감정 다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내게 박범신 작가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존재의 욕구와 삶의 애착 등을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은 죽고 싶다는 욕망 이상으로 강하게 작용하는 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하여 주기에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런 소통이 없었다. 무덤덤했다.
그러나 소설 《은교》는 박범신이기에 가능한 작품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주인공의 세밀한 내면 묘사,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드는 플롯, ‘역시 박범신’이란 탄성이 입속에서 뛰쳐나온다.
작가 박민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모든 사랑은 오해라고 말한다. ‘오해’는 참 무섭다. 오해라는 것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하면 그것은 부풀어 오르는 풍선 마냥 점점 더 커지기만 할 뿐 쉽게 사그라지진 않기 때문이다. 소설 《은교》에서 이처럼 무서운 「오해」라는 녀석을 만날 수 있다. 오해의 시작과 끝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