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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강의
야오간밍 지음, 손성하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평점 :
중국의 성인 노자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자가 남긴 글, 도덕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자, 공자, 맹자 등 성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남긴 글, 즉 도덕경이나 논어 등의 고전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특히 현대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딱딱한 문장이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은 특정 몇몇 사람들만이 연구하는 학문으로 여깁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 간혹 ‘도를 아십니까?’를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길 위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왠지 사기인 듯 느껴져 그들이 곁에 다가오는 게 꺼려졌습니다. 그리고 ‘도’는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강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의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도」를 제대로 이해해서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은 2천여 년 전에 쓰인 지혜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바꿔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맑고 건강한 「도」의 이미지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이 책 《노자강의(2010.3.26. 김영사)》를 읽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노자강의》를 읽은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5천 글자로 이루어진 도덕경이 2천5백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인에게 교양과 지식을 전달한다는 이 책의 소개가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2천5백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노자강의》는 18강으로 나누어 인생을 말하는 노자의 말씀과 인간관계를 말하는 노자의 말씀을 담았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입과 눈, 귀와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많은 것들이 떠돕니다. 아니 즐겁다는 단어보다 황홀하다는 단어가 더 적합하겠습니다. 황홀한 것만 찾는 시대가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입니다. 이런 시대를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노자는 비움과 고요함, 부드러움과 겸허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홀로 사는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바로 옆 사람과도 경쟁해야 하는 지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느 시대보다 더 중요해 지는 교제의 도에 대해 말합니다. 2천5백 년 전에 쓰인 글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에 꼭 필요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도덕경』을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기는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고전을 어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해와 해석의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년 전 즈음 논어 입문서라고 부를 수도 있을 법한 얇은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공자의 시간과 현대의 시간 사이의 간격이 좁아짐을 느꼈습니다. 공자의 말씀이 과거 그 시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말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비로웠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면 또 다시 잊어버리고 말겠지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였을 테니 더더욱 잘 잊혀 질 것입니다. 이 책 《노자강의》는 한 번 읽는 것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는 책입니다. 한 번 읽는 것조차 힘들게 읽었으니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입니다.
저자가 후기에 쓴 문장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인생이란 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점은 ‘사는’데 있고, 귀함도 ‘사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도가 낳고 道生之, 덕이 기른 德畜之”다음이라야 삶이 진실해지고, 삶이 진실해야 아름다우며, 삶이 아름다워야 좋은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그 누구라도 성공으로 인도할 수 있는 소중한 경전입니다. 경전의 힘은 그것이 가진 왕성한 생명력에 있으니, 오랜 시간이 흘러도 쇠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새로워집니다.(p437)
경전의 힘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