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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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다.  시선은 휴대폰에 꽂혀있고, 혹시 전화나 문자가 왔었는데 내가 몰랐던 건 아닌지 불안에 떨며 재차 확인하게 된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럴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하는지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앞에서 머리라도 조아릴 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게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린다는 건 나 자신을 점차 잃는 것과 같다.  그와 함께여야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 《풀밭 위의 식사》의 주인공 누경은 오랜 시간 가슴속에서만 존재했던 사랑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녀, 자신이 된다.  그런데 드디어 자신을 찾았다고 느꼈을 때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현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물지 않은 상처뿐이다. 




《풀밭 위의 식사》는 기훈이 바라보는 누경에 대한 이미지로 시작된다.  기훈에게, 나에게, 누경은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 질 때 즈음 소설은 누경이 쓴 일기를 보여주면서 과거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누경의 과거에는 그, 서강주가 있다.  서강주가 곁에 있어서 행복하지만, 누경은 상처받는다.  서강주와의 삶만이 의미 있지만, 세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삶이기에 순간순간 누경의 가슴은 무너진다.




‘크리스마스이다.  나는 혼자 있다. (...) 우리 사이에 가능한 것을 적어본다.  너무 빈약하다.(p131)’




소설은 누경의 과거를 더듬어가면서도 가끔 잊지 않고 현실로 돌아와 누경을 바라보는 기훈의 시선을 보여준다.  인간은 때때로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자신이 느끼는 고통, 자신이 짊어진 짐이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무거운 줄 안다.  누경에게는 자신의 사랑과 상처만 보이고 타인의 사랑과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  하지만 상처는 어느 순간 치유되기 시작하고 그녀 자신조차도 믿지 못했던 세상 속에서의 삶을 마음에 품기 시작한다.




‘살림살이와 음식 냄새와 세월과 타인들... 누경은 자신의 사랑이 그런 모습으로 변장해서 삶과 속살거리기를 바랐다.(p241)’




《풀밭 위의 식사》는 주인공 누경의 사랑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동시에 누경을 향한 기훈의 사랑, 인서를 향한 누경의 사랑의 울림을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누경의 오래된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부서지는 유리처럼 금방 깨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살얼음판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했다.  하지만 아프고 아픈 끝에, 견디고 견딘 끝에 깨어지지 않는 게 사랑(p227)이고, 어떤 균열이든 두 팔로 끌어안고 지속하는 그것이, 사랑의 일(p227)이란 진리를 깨닫게 된다.  사랑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 걸까.  이 책은 기훈에게 누경이 어떻게 사랑으로 다가왔는지, 누경에게 강주가 어떻게 사랑으로 다가왔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간과 장소에서 누경의 마음속으로 불쑥 들어온 인서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사랑이 어떻게 기훈에게 왔고, 누경에게 왔는지 그리고 내게는 어떻게 왔는지, 이 소설의 마지막장까지 읽고서도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시작되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사랑이 찾아오면 우리는 살아내면 되고, 사랑이 가면 그것 역시 살아내면 되는 것이기에.




이 소설의 제목이 왜 《풀밭 위의 식사》일까 생각해 보았다.  누경에게 「풀밭」은 수치심과 공포 그리고 모멸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로버 풀밭에 버려진 헝겊인형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누경은 누군가에게 풀밭으로 소풍을 가자고 말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던 공간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고 싶은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누경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뜻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어떤 변화인지 그것은 우리만의 비밀로 해 두자.  그것이 어떻게 누경에게 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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