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닷가의 모든 날들 - 둘리틀과 나의 와일드한 해변 생활
박정석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바닷가 집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오래 전에 어느 영화에서 본 커다란 유리창이 매력적인 집이 그것이다. 유리창 넘어 파도가 넘실거리는 성난 바다의 모습,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의 모습 등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집이 어찌나 예쁘게 보이던지 나중에 내 집을 갖게 된다면 저런 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더랬다. 왠지 그런 집에서 살면 내 삶이 낭만적이고 로맨틱해 질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린 지금은 안전을 생각해서 바닷가 집은 별로지만 말이다.
차로 20분 남짓만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고향이기에 내륙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품고 있는 바다에 대한 동경 따위는 내게 없다. 단지 나는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면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 갑갑한 마음 등등 모두를 버리고 머리와 가슴을 비울 수 있는 데는 바다만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바다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줄 것만 같은 책, 《바닷가의 모든 날들(2010.2.8. 중앙북스)》의 책장을 넘기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나는 바다가 끼어 있는 도시에서 살면서도 모르는 것을 이 책의 저자 박정석은 알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누가 더 바닷가의 매력을 많이 알고 있는지 내기해 볼까’라는 심보가 발동했다고 하면 적절할까.
《바닷가의 모든 날들》은 바닷가에서의 반짝반짝 빛나는 흥미로운 삶을 보여주는 에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처럼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삶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도시에서의 삶이든, 시골에서의 삶이든, 바닷가에서의 삶이든, 모든 삶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든 이유는 현실이란 벽에 무기력하게 부딪히는 한이 있어도 그 안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내는 데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폭설에 갇힌 어느 겨울날인데 - 눈에 갇히는 건 나도 꼭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 얼마 전 3월에 때 아닌 폭설이 내렸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갑작스럽게 고립되는 경우는 막막하고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정말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고립이란 고독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상상으로 간직했던 것과 직접 마주쳤을 때는 느끼는 바가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이 뭐더라.....(p19)
나는 작년에 「가장 보통의 날들(김신회 지음)」이란 책을 읽으면서 아무도, 누구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어느 곳에 가서 한 달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좋고, 외국도 좋고 - 우리나라를 떠난다면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 그곳이 어디든지 내가 아는 사람이 없고,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바쁜 생활에 치여 살다 보니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냐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내게 익숙한 도시를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보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꼭 그곳이 바닷가가 아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