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함민복 에세이
함민복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올 여름도 거의 지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업무 차 창녕에 위치해 있는 노인요양소에 들릴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을 마친 후 수녀님의 안내를 받아 할머님들의 잠자리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앉을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는 할머님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 계신 시간이었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아흔을 훌쩍 넘긴 할머님 한 분만이 홀로 침대에 누워계셨습니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눈동자가 참 맑으신 분이구나 생각하는 찰나, 수녀님께서 할머니께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니, 누구 생각하세요?” “...” “할머니, 조금만 혼자 계세요.  손님 배웅하고, 금방 다시 올게요.” “...” 할머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혼자 계신 할머니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데 수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도 젊은 시절에는 글도 쓰고, 책도 읽으셨을 텐데 지금 모습에서는 옛날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나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젊은 시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는 모습으로 앉아있게 될 상황이 떠올라, 허전하고 허탈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만 예외가 적용되는 법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시간의 법칙이니 억울할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창녕에서 이름 모를 할머님 한 분을 뵙고 온 후 한동안 마음은 더없이 공허했지만 삶에 대한 의욕이 더 커지는 감정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함민복의 에세이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2009.10.1 현대문학)》을 읽게 되었습니다.  함민복의 시 〈그늘학습〉, 〈선천성 그리움〉 등을 좋아했던 터라, 그의 에세이집이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읽으면서 창녕에서 뵈었던 할머님 생각이 더 깊어져갔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도 간절해졌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 내린 이유는 함민복의 에세이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가 지나간 옛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사랑했던 감정을 되살아나게 하고 그래서 잊고 싶었던 아픔도 생각나게 만듭니다.  작가의 추억이 나의 추억과는 다르지만, 작가의 감정은 나의 감정과 비슷하기에, 작가가 느끼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어서 실성한 사람처럼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그렇게 되는 책입니다. 




사담이긴 하지만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읽으면서 발견한 「오이냉국」은 예전 어느 책에서 읽었었던 기억이 떠올라 기뻤습니다.  이 글이 함민복 시인의 글인 줄 몰랐었거든요.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는 떠나가는 사람 뒷모습을 닮은 책입니다.  그래서 쓸쓸한 이 가을에 꼭 어울리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가을을 닮은 책입니다.  점차 멀어져가려는 이 가을, 늦기 전에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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