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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빛 ㅣ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미우라 시온’의 작품은 처음 읽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보고서 사람을 제대로 느끼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처음 느껴지는 ‘나와 통할 것 같다 혹은 나와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믿는 편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좋다 혹은 나쁘다’처럼 이분법적 결론을 내린다는 게 어쩌면 선급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책 중에서 몇 권을 선택해서 읽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첫 느낌에 도움을 종종 받습니다. 간혹 그 느낌만 믿고 읽지 않았다가 좋은 평가를 얻는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뒤늦게 합류하게 될 때도 있지만요. ‘미우라 시온’의 소설 《검은빛(2009.8.31. 은행나무)》은 한밤중에 들이닥친 쓰나미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앓는 세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노부유키와 미카, 다스쿠는 미하라 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조그만 섬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친밀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부유키와 미카는 모두가 잠들었을 때 신사에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그런데 다스쿠가 노부유키의 뒤를 따라와 세 명이 신사에서 만나게 됩니다. 신사에서 바다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차에 바다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을을 먹어치우는 쓰나미를 목격합니다. 아빠와 엄마, 동생들이 잠들어 있는 집이 파도에 의해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지만 손 놓고 멍하게 바라만 볼 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합니다. 쓰나미가 물러간 후 그러니까 어둠이 물러간 후 세 아이는 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가 봅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추억의 장소, 그리운 사람들, 모두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세 명의 아이는 어떤 모습을 자랄까요?
《검은빛》은 매 맞는 아이 다스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모진 학대를 받는 다스쿠를 마을 사람들 모두 걱정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쓰나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세 명의 아이가 느끼는 무기력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미카를 겁탈하려는 섬 밖 사람을 목 졸라 죽이는 노부유키와 이를 목격한 다스쿠를 보여줍니다. 가족을 잃은 충격과 상실감으로 다시는 아무도 잃지 않겠다는 집착에서 서슴없이 사람을 죽이는 노부유키의 모습은 무섭습니다.
《검은빛》은 노부유키와 미카, 다스쿠의 어린 시절을 잠시 보여줍니다. 물론 섬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대부분은 성인이 된 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할애됩니다. 평범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듯 보이는 노부유키,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다스쿠 그리고 연예계에서 성공한 듯 보이는 미카는 더 이상 한 가족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픔으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미카에게 노부유키가 상처이고, 노부유키에게 다스쿠가 상처입니다.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입니다. 그러나 그 슬픔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상실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노부유키와 미카는 마지막까지 상처를 덮고 감추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쓰나미가 그들의 고향 미하라 섬을 집어삼켰던 그 짙고 어두운 검은빛에서 계속 머물게 됩니다. 검은빛은 영원히 그들 곁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미우라 시온’의 첫인상은 차갑고 춥다는 느낌입니다.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싫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상처의 감정을 검은빛 하나에 응집시켜 이야기하는 모양새가 인상 깊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은 어떤 빛깔일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