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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스 - 21세기 코믹 잔혹 일러스트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하나자와 겐고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집에 도착한 《모던타임스(2009.8.20. 웅진지식하우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육백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에 주눅이 들어 ‘새 책이 생겼다.’는 기쁨도 잊고 ‘읽으려면 오래 걸리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책을 펼쳐보니 까만 글자보다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만화에 더 눈길이 머문다. 만화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없지만, 만화 덕분에 수월하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스』를 21세기 버전으로 각색한 작품이라고 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소설과 영화가 얼마나 비슷한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대부분 재미있고 웃기지만, 그 웃음은 희극적인 요소보다 비극적인 요소로부터 기인하며 언제나 눈물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특징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소설 《모던타임스》는 ‘모든 사건은 검색에서 시작되었다.’는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즉 모든 사건의 발단은 인터넷에서 특정 단어로 검색을 시도한 행위로부터이다. 주인공 와타나베와 동료들은 처음에는 직업상 단순한 호기심으로, 다음에는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사건의 진원지를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던 중 후배는 부녀자 폭행범으로 몰리고, 상사는 자살하고, 친구는 여자에게 칼에 찔려 목숨을 잃고, 사라졌던 선배는 실명한 상태로 나타나는 등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된다. 무엇을 감추려고 하는지,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특정 단어로 검색을 시도하는 자가 확인되면 즉시 그 사람의 취약점을 찾아내어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와타나베는 타인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차단하는 시스템, 이 시스템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특성 때문에 그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피해자의 중심에 자신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라 불릴 만큼 인터넷이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터넷이 우리의 삶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지만 익명으로 활동하는 공간적 제약으로 인하여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제 3자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거짓 소문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더 크게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경우까지 생긴다. 소설 《모던타임스》는 우리가 처해있는 현재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인터넷의 단점과 인터넷이 악용되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 프로그래머가 직업인 주인공 와타나베는 더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해결점을 찾는다. ‘손가락 살인’이란 말이 생길정도로 피해 정도의 심각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 깨끗하고 정직한 인터넷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겠다.
소설 《모던타임스》는 소설에 만화를 접목시켰다. 지금 세상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아 무겁다면 무겁다고 할 수도 있는 주제를 만화와 한 공간에서 다룸으로써 조금은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날카로운 풍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지금도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조심스럽게 재빨리 다가와 새끼손가락을 쥐고선 “용기는 있나?” 물을지도 모른다. 항상 뒤를 조심하시길. 나는 일주일 즈음 누가 내 손가락을 노리지는 않는지 긴장 상태로 지낼 듯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깊숙이 몰입한 대가이니 시간이 흘러 저절로 잊힐 때까지 기다릴 밖에 도리가 없다. 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