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원제가 '사기의 해부(THE ANATOMY OF DECEPTION)'인 소설 <죽음의 해부>는 촉망받는 외과의사 '캐롤'이 동료 의사 '터크'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의 죽음과 관련된 숨겨진 사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이미 세상을 등진 인체에 칼을 대고 분석하는 것을 해부라고 한다.  <죽음의 해부>는 소설의 원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단순히 죽음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가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속이고 속이는 치밀한 두뇌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시작은 지루하다.  필라델피아 대학병원의 시체안치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해부학 실습을 위해 모인 의사들이다.  작가는 소설 <죽음의 해부>의 처음을 독자에게 실제 해부학 강의를 지켜보는 것과 같은 생생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문적인 색채가 짙은 처음 몇 십장은 읽기가 참 힘겹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죽음의 원인이 질병보다는 대량출혈이나 쇼크, 간염이 더 많았던 시절, 그리고 생채 해부에 대한 반감이 심했던 시절의 사실적인 묘사가 인상 깊다.

처음 지루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넘기기만 하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된다.  사건이 전개되어 감에 따라 점점 더 단단해져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캐롤의 직업은 의사이다.  어느 날 해부학 실습을 위해 관 뚜껑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누워있었다.  소녀를 본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모두 숨을 삼킨다.  그리고 오슬러 교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수업을 중간에 멈춘다.  캐롤은 그때 오슬러 교수와 조지 터크의 반응이 이상했다는 점을 기억한다.  그리고 터크가 독살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관 안에 있던 소녀가 '레베카 라흐트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지 터크와 레베카 라흐트만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소설에서 레베카 라흐트만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정작 독자는 살아있는 그녀를 만날 수 없다.  작가는 독자에게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소설의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다섯 가지의 짧은 이야기에서이다.  그녀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가녀린 소녀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조지 터크와 레베카 라흐트만 사이에는 더 큰 사기극이 숨어있었으니 이것을 밝혀내는 게 캐롤이 할 일이다.

 

<죽음의 해부>에서는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외과의사인 윌리엄 오슬러와 윌리엄 홀스테드 그리고 19세기 미국 의학계의 현실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 등이 그들이다.  작가는 소설의 끝에서 사실은 무엇이고 허구는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지만 그들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 소설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분간하기 힘들어진다.

 

다수를 위한 선, 수천 명의 목숨을 위한 한 사람의 희생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P520)

과학과 종교에서 합일점을 찾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하듯이, 과학과 도덕에서도 합일점을 찾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판단하는 사람들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희생되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흥미로운 소설 <죽음의 해부>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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