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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무비 - 조승희 프로파일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송병선 옮김 / 꾸리에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조승희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순간은 일대일 강의를 하던 시간이었어요.
나는 그에게 다른 학생들과 의사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했고, 그는 처음으로 내게 말했어요.
- 난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 그럼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안녕, 잘 지내?'라고 말해봐.
조승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내게 말했지요.
- 언젠가 그렇게 해보겠어요.
나는 총기난사를 시작하기 바로 전에 그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읽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p177
조승희는 한창 수업이 진행되던 노리스 홀 206호 강의실로 들어가 교수님께 '안녕, 잘 지내?'라고 물은 후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다. 안부를 물을 때 쓰곤 하는 '안녕, 잘 지내니?'라는 인사말이 이토록 슬프고 안타깝게 들리기는 처음이다.
2007년 4월 16일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2007년 4월 16일'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으로 고쳐 쓴다면, 아마 바로 기억 날 것이다. 수업 중이던 교수와 학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32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은 당시 전 세계를 놀라움에 빠트렸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주인공인 조승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미국 내 한인 사회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었지만 이미 그 사건은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조승희가 어쩌다 그런 막다른 골목까지 이르렀을까를 생각해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당시 언론매체로부터 접할 수 있었던, 그의 행동은 철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는 점, 그는 오랫동안 외톨이로 지냈다는 점 등의 단편적인 정보로 조승희를 무서운 사람 혹은 정신이상자쯤으로 판단하고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멀리 이국땅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으로 치부해버렸었다.
놀랍고 무섭고 슬픈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너무 쉽게 잊혀졌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이제야 제대로 알겠다고 나서는 건 지금 시점에서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 날 일어난 사건을 진지하게 살펴본다면 타인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여 준 조승희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가 그의 고통 또는 슬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래봤자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말이다.
이 책은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양파의 텅 빈 중심으로 가는 여행)은 저자가 CNN 뉴스에서 우연히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본 후 비극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2장(4월의 어느 추운 월요일)은 조승희의 첫 번째 살인에 대한 기록이 담겨져 있고, 3장(총기난사로 가는 길)에서는 많은 희생자를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승희의 발자취를 추적하면서 알아보고 있다. 4장(계획된 종말)은 조승희의 마지막 행보를 담고 있으며, 5장(일그러진 정신의 해부학)에서는 분노로 비틀어져버린 조승희의 마음과 정신을 파헤친다. 그리고 부록으로 그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조승희가 직접 쓴 글이 수록되어 있다.
<매드무비>는 2007년 4월 16일에 발생한 사건을 시간 순서로 나누어 자세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그날 일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정신이상자의 단순한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란 것은 이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살아남은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 얼마나 치밀했으며, 얼마나 지독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알아갈수록, 조승희의 병이 얼마나 깊었는지 느낄 수 있어서 안타까움만 더해간다. 자신과 같은 인간에게 망설임 없이 총부리를 들이댄 조승희가 더 가엾고 애처롭게 느껴진다.
이 책 전체에서 독자는 조승희라 불리던 한 남자와 맞닥뜨린다. 버려진 조각 같은 정보로 조승희의 심리를 파헤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 속에 진정한 조승희는 없다. 단지 그의 마음과 정신을 짐작하고 이해해 보려는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매드무비>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관심 없이 다른 쪽을 바라보는 행위는 단지 재앙만을 일으킬 뿐입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에서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P13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가 인간에게 얼마나 위협적이며 위험한가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에서 발생했지만 그런 비극은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일깨워주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야함을 알리고 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었든 간에 조승희가 만들어 낸 진실과 우리가 만들어 낸 진실은 다를 바가 없다. 이 세상 전체가 점점 더 진실과는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관적으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마음을 갖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과 정신은 이제 자유로워 졌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