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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의 개 -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의 띠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언제나 떠나고 싶은 마음과 무거운 엉덩이 사이에서 갈등만 하는 기질 덕분에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래서 누군가가 여행을 다녀온 후 그곳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눈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글과 사진이 담긴 여행에세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비슷비슷한 여행 서적들의 출간이 계속 되면서 여행에세이에 대한 감정이 예전에 비해 많이 감소되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멋진 사진과 짧은 글로 이루어진 기존의 여행에세이에 실증을 느낄 때 이 책 <황천의 개>를 만났다. 제목에서부터 예전에 읽었던 책들과는 분명하게 다름이 느껴진다. 후지와라 신야가 보는 인도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 읽었던 여행에세이는 모두 마음을 들뜨게 하고 설레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나 건축물들, 나와는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사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어서 사진 속에 담겨 진 바로 그 장소로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마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붕 떠오른다. 그런데 이 책 <황천의 개>는 지금껏 접했던 여행에세이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고 저자가 겪었던 모든 경험들이 부럽다는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고, 부러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 한숨만 나온다.
<황천의 개>는 다섯 편의 에세이와 다섯 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의 글은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쉽지도 않다.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라서 쉽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황천의 개>에 수록된 글은 극한을 체험해 본 사람의 글이고 절망을 느껴본 사람의 글이다. 극한을 체험 후에 삶의 의지가 더 강해짐을 아는가. 가장 밑바닥의 절망을 느껴본 사람만이 진정한 삶의 기쁨도 누릴 줄 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 책은 바로 이 사실을 말해준다.
후지와라 신야의 작품은 <황천의 개>로 처음 접한다. 다른 어떤 철학책보다 더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는 그의 글에 중독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