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비극과 희극은 아주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택의 순간에 왼쪽으로 갔느냐, 오른쪽으로 갔느냐와 같은 순간의 결정으로 비극 또는 희극으로 나뉘어 지는 게 아닐까.  아주 사소한 순간의 결정으로.  그러나 그 순간의 결정은 마치 운명과도 같아서,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왼쪽으로 정하든지 아니면 오른쪽으로 정하든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거부할 수 없을 것만 같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레아>에서 주인공 레아와 레아의 아버지 마틴 반 블리에트가 기차역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여자를 만났을 때, 그 만남이 그들을 불행의 끝으로 다가가게 하는 사건의 시초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마치 운명처럼, 그 사건은 그렇게 그들 앞에 나타났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유명한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 <레아>에서 우리는 레아를 직접 만날 수 없다.  기차역에서 우연히 바이올린을 켜는 여자를 본 후, 자신의 삶을 바이올린과 함께하는 데 바친 레아를 독자는 레아의 아버지 마틴 반 블리에트가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외과의사 아드리안 헤르초크에게 자신의 지나간 삶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려는 이야기 속에서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큰 상실감을 느끼며 지내던 레아는 바이올린을 만나면서 의욕을 되찾는다.  그런 딸을 보는 아버지 마틴 또한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레아가 바이올린과 더 가까워질수록 아버지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딸과의 사이가 벌어질수록 아버지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지만 마지막까지 딸의 곁을 지켜주려고 한다.  레아를 지키기 위해 마틴이 선택한 방법이 정직하지 않고 도덕적이지 않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마틴에게 돌멩이를 던질 수는 없을 것만 같다.  딸과 아버지 사이에 바이올린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들의 삶은 달라졌을까.  뻔히 보이는 불행의 끝으로 달려가는 딸과 아버지의 인생이 소설 속에서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그만큼 안타까운 마음은 커져만 간다.

 

무엇인가에 너무 깊이 빠지는 것 그리고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영혼에게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파괴되는 것조차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집중하고, 그로 인하여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있음을 잊고 지내는 것은 너무나 불행하지 않은가.  레아와 마틴의 삶이 안쓰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