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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박스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빨강과 검정으로 무장한 이 책은 처음부터 가볍게 지나치는 눈길을 허락하지 않는 도도함으로 눈을 사로잡더니 마지막에는 치밀한 상상력으로 마음까지 사로잡아 버린다. 개인적으로 역사물을 좋아하기에 이정명 작가의 신작 <바람의 화원>을 처음 본 순간 저항도 하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을 내주었다. "나를 더 좋아하게 될 거야." "나에게 푹 빠지게 될 거야."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내 눈길을 피하지 않으며 나를 맞이한 이 책에 나는 내 마음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싶습니다."
조선 시대 풍속화가로 유명한 김홍도와 신윤복, 두 천재화가가 주인공이다. 도화서의 정형화된 양식과 규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김홍도. 그는 자유롭게 날고 싶은 한 소년을 만난다.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자신과 달리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싶다(p110)는 욕망을 망설임 없이 드러내는 제자 신윤복을 김홍도는 보호하고 가르친다. 도화서를 떠난 화원은 더 이상 화원으로 존재할 수 없고 도화서 밖에서 그려진 그림은 더 이상 그림으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김홍도는 신윤복의 천재적 재능을 도화서에 붙잡아 놓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그러했듯이 신윤복 또한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윤복은 답답하고 외로워진다. 반대로 김홍도는 자유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그림에 난잡한 색의 사용을 금지하고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기교와 양식만을 중요시하는 도화서 화법을 인간의 영혼을 담지 못하는 죽은 기교(p118)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신윤복, 제자 신윤복의 그림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을 되찾게 된 김홍도 그리고 낡고 부패한 조정의 개혁을 원하는 정조대왕의 만남은 혁명이었다. 가진 것이 있고 지켜야할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 사람으로 부터 부는 변화의 물결을 막아야만 했다.
이 책에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 34점이 수록되어 있다. 그 그림들은 동제각화(同題各畵), 즉 같은 제목 아래 같은 조건으로 같은 시간에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 두 화가의 그림 대결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데, 소설 속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두 천재화가의 그림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소설 속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인양 착각하게 만든다.이 책에서 작가는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두 천재화가 이야기에 긴장감을 주고 집중력을 높이는 장치로 10년 전 발생한 도화서 화원 의 의문의 죽음을 밝히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첨가하였다. 단순한 역사소설을 넘어서 역사추리소설로 완성된 <바람의 화원>은 더욱 흥미롭다.
이정명 작가는 이 책 <바람의 화원>으로 처음 만났다. 조선시대에 바람처럼 살다 간 천재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재탄생 시킨 이 작품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매력적이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많이 즐겁고 행복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매력에서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방해받지 않고 책읽기에 몰두할 수 있는 지금 독서삼매경에 빠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