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1월 초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어둡고 무거워져갔다.  도심 속 나무들도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잎의 색깔을 달리하기 시작했고, 제 몸 아래로 잎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런데 나무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모습과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점점 더 밝고 가벼워져갔다.  나는 처음 며칠, 아니 며칠보다 더 긴 시간동안 그들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무관심하다고 해야 할까, 이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한 곳만 바라보며 주위를 살피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종 중요한 순간을 놓치기 일쑤이다.  올 가을에도 그들은 제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에 충실하며 서 있었지만 나는 한참 후에야 그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놀랐다.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아름다움에 취해 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나무를 올려다보던 중, 왜 지금까지 여기 서 있는 나무를 몰라봤을까 자책하던 중, 소설 <나무>가 내 손에 쥐어졌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친구에 비유되어 진다.  봄에는 꽃을 피워 눈을 즐겁게 하고, 여름에는 그늘을 드리워 땡볕을 피하게 하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어 수확하게 하는 [새벽예찬 中, 장석주] 나무의 한결같음을 두고 인간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없이 베푸는 친구에 비유한다.  소설 <나무>의 주인공인 할아버지 나무도 그런 존재이다.  어쩌면 친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 나무는 지혜롭고 너그럽고 넉넉한 모습으로 손자 나무에게 자연의 순리,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삶의 태도를 가르쳐 준다.  할아버지 나무와 손자 나무의 대화는 눈 오는 겨울 밤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를 귀 기울이며 듣는 어린 손자, 손녀의 모습처럼 따뜻하고 훈훈하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밤나무, 매화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닥나무 등을 등장시키며 그들의 생애를 보여준다.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잎을 내고 열매를 맺는 일, 그 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고통을 이겨낸 후의 인내의 결과물이었다.  인간이 세월이 흐를수록 인생에서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느끼듯이 나무도 역시 그러하다.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길목에 은행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초록빛이던 나무가 어느 순간 노란빛으로 변하였는지 기억에 없다.  그러나 변화를 인식한 후로는 매일 그들과 눈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노란빛으로 장관을 이루던 은행나무들이 오늘 아침에는 모두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다.  한 순간이었다.  매일 조금씩 나무 밑이 떨어진 잎으로 수북해져가고 있었지만 은행나무는 여전히 밝은 노란빛을 띄며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정말 한 순간이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아봤더라면 더 오래 눈에 담을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노란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은행나무가 아닌 것이 아니므로.
 
나무를 예찬하는 글은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귀로 소설 <나무>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겨울이 되면 가진 걸 다 버리고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그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한결같음에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을 받아들이는 그 의연함에서,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마음 씀씀이에서 나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삶의 가치들을 배운 것이다.  [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中, 우종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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