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너북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책 읽기를 끝낸 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벌똥'이란 단어로 검색을 시도했다.  올 봄부터 이것으로 계속 고생하고 있었던 터라, '벌'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조건 '벌똥' - '벌의 배설물'이라고 해야 하나? - 이 되었다.  작년 겨울 회사가 약간 외진 곳으로 이전을 하면서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조용하기까지 한 완벽한 사무실을 갖게 되었지만 봄이 되면서 부터 곤란한 일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차 앞범버부터 뒷범버까지 황금색으로 도배를 해 놓은 벌똥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의 정체를 모르고 제거를 시도해 봤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그것과의 사투로 지친 후 차를 이끌고 세차장에 가서야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괘씸한 벌...
벌에 대한 나쁜 기억 - 사소하다면 사소한 - 만 가지고 있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조금, 아주 조금 벌이 멋진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 책과의 만남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 책에선 벌의 배설물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이 책은 모리스 메테를링크가 '벌'을 관찰한 사실을 거짓 없이, 과장 없이 서술한 에세이다.  책 곳곳에서 저자가 가지고 있는 벌에 대한 애정과 신비로운 벌 공동체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단순히 벌을 관찰한 사실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동시에 인간의 사회와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공간도 이곳저곳 남겨두고 있다.

 

또한 저자는 관찰자의 목적은 신비로운 관찰 결과로 인간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다(p163)라고 말하고 있는데, 자신이 정의 내린 관찰자의 자세를 완벽하게 이행하여 관찰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 결과 벌에 대해서 아름답고 경이로운 해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벌을 관찰하는 과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들도 있다.  저자는 그것을 인간의 자만심으로 지성이 없는 곤충이라는 식으로 치부해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지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주관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도 저자가 정의 내린 관찰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작은 꿀벌들은 충실한 본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탄할만한 지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바라보기엔 놀랍기만한 그들의 도시 벌집, 풍족하고 안락한 고향을 버리고 위험한 희생을 감행하는 선택된 분봉 무리들, 반대로 선택된 남겨진 무리들 그리고 인간이 꿀벌들을 시험해 보고자 할 때마다 보여주는 그들의 놀라운 진보 능력에서 벌들에게 지성이 없다는 결론은 내릴 수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자연의 위대한 힘이 벌들에게도 존재하는 것인가 보다.

 

그러나 꿀벌의 진보하고 있는 지성이란 것에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자연의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의 진화의 길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든 규칙에 끼워맞춰진,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에 저자는 무언가를 주장할 생각은 버리고(p205) 자꾸 탐구해보려는 열의를 더욱 널리 퍼뜨리(p202)라고 말한다.  이 지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물체를 에워싼 어둠 속에서 새로운 관념이 처음으로 뭔가를 모색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니까(p208).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벌>은 단순히 벌에 관한 사실을 담은 자연에세이라고 단정짓기엔 너무나 깊이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저자는 벌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좀더 자연스럽게, 좀더 여유롭게, 좀더 풍요롭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 모든 아픔과 더러움을 포용할 듯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자연의 마음을 닮고 싶은 독자를 이 책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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