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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 내 이름은 프로피. 이스라엘 땅의 유대인이다. 프로피는 프로페서, 즉 교수의 줄임말로 단어를 조사하여 집요하게 확인하는 버릇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나는 친구 벤 허, 치타 레즈니크와 함께 비밀지하조직 FOD(Freedom or Death)를 만들었으며 조직 내에서 나의 역할은 부사령관이면서 조직의 두뇌이다. 이 소설은 내 나이 열두 살 삼 개월 때 경험한 일들을 쓴 글이다."
프로피는 이스라엘이 탄생하기 직전, 영국 위임 통치 시절 예루살렘이라는 혼돈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어른들은 감시와 처벌이 존재하는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어둠 속에서 비밀조직을 위해 싸운다. 그리고 프로피와 같은 어린 아이들 역시 히브리 국가 건설을 꿈꾸며 지하조직 투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프로피는 영국인 경사 스티븐 던롭을 만난다. 프로피는 던롭 경사와의 만남을 영국에 대한 기밀 정보를 빼내려는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했지만 FOD의 우두머리 벤 허는 그를 믿지 않고 배신자라고 칭한다. 그는 배신자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벤 허는 적을 사랑하는 것은 최고의 배신이야(p108)라고 말한다. 프로피는 자신의 어머니가 사랑을 한다면 그 누구도 배신자가 아니야(p11)라고 말씀하신 것을 떠올리며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더 당혹스러운 것은 벤 허가 이야기한 대로 자신이 던롭 경사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춘기 소년 프로피는 적과 배신자의 경계를 무엇으로 단정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시간 속에서 성장한 프로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족 그리고 다른 모든 유대인들이 히틀러에게 살해당한 사실을 알고 있으며 독일 뿐 아니라 폴란드와 영국, 다른 나라 모두 유대인을 미워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프로피가 자라면서 보고 들은 사실과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미루어 볼 때 그의 생각과 행동은 모두 이해가 가능한 일이다. 내 존재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로피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왜 적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미워해야 하는 건가에 대해 고민을 할 뿐이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아모스 오즈의 작품은 이 책 <지하실의 검은표범>으로 처음 접해 보았다. 이 책을 통해서 만난 작가 아모스 오즈의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는 않다. 불안한 도시에서 성장한 한 소년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허구를 바탕으로 쓰여 진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있는 작품이라고 해서 더 주의 깊게 읽었다. 그러나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이야기 전개가 내게는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으며 열두 살 삼 개월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청년 프로피가 바라보는 시점이 복잡하게 얽혀져 자주 흐름이 끊어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기에 <지하실의 검은표범>이란 작품은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