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on the Pink
이명랑 지음 / 세계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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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 해 여름 장마철이었다.  나는 비를 피해 우리 집 맞은편 지붕 밑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학생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그 사람을 학생으로 인식한 이유는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복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어느 중년 여성쯤으로 여겼으리라.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양새하며 능숙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 그리고 많이 고단해 보이는 얼굴 표정까지, 어느 한군데 학생으로 보이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슬쩍 보고 지나쳤다면 피곤함에 지친 어느 아줌마가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 것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어린 여학생에게서 어떻게 저런 모습,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 걸까....?

 

나는 가끔 내가 이유 없는 선입관으로 색안경을 끼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그 중 하나는 담배를 피우고 가출을 하는 학생들, 소위 문제아에 대한 선입관이다.  나는 그 아이들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까지 스스로를 내몰아선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오늘 우울한 이유가 있고, 오늘 힘든 이유가 있고, 오늘 즐거운 이유가 있듯이 그 아이들에게도 아이들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고통을 간직하고 있음을 짐작하지 못했다.  선입관이 깨졌을 때,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우연히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한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가출 경험이 있는 아이였다.  나는 그런 아이들은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르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근거 없는 생각이 언제부터 머리에 뿌리내렸는지 지금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아이는 너무나 천진난만했다.  너무나 예뻤다.  정말 16살 소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10대 소녀들이다.  난생 처음 듣는 단어를 사용하는 그들, 학생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저러지 않았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꿈도 없는, 아무런 대책 없어 보이지만 그들 스스로 상처와 아픔을 딛고 미래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미처 배울 기회를 갖기도 전에 세상은 우리를 금 밖으로 내몰았지만 봐!  우린 이렇게 실수와 상처로 얼룩진 계단을 밝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잖아!  (...)  포기하지 않아! (p222-223)

 

이명랑 작가가 표현한 10대 소녀들의 모습은 현재 그들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고통과 실패의 경험이 인간의 인격적 성장을 도와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감당할 만큼의 고통과 실패의 몫을 겪게 하여 주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날라리'라고 칭하여 지는 그들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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