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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인간의 조건>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어느 것이 실제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판단 할 수가 없다. 실제 모습은 캔버스에 의해 가로막혀 그것을 통해 보여 지는 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캔버스에 나타나 있는 상이 너무나 실제 같아서 그 이면에 다른 세상 혹은 다른 모습이 존재하리란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림 속에서처럼 인간이 바라보는 시선은 캔버스 혹은 창과 같은 틀 안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 복잡한 세상의 이면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만 믿는 게 가장 쉬운 일이니까. 이 책 [암스테르담]에서는 속과 겉이 다른,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냉혹한 인간이 등장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게 없다. 대체로 우리 모습은 빙산처럼 대부분 물에 잠겨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하게 밖으로 솟아있다.(p89-90)
[암스테르담]의 주인공은 몰리 레인을 사랑한 네 명의 남자, 작곡가 클라이브와 신문사 편집국장 버넌, 외무장관 가머니와 몰리의 남편 조지이다. 갑작스럽게 생의 문턱을 넘은 몰리의 장례식장에서 그들은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네 명의 남자는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른바 성공한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뒤로 감추고 있는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몰리와 관련되어 있다. 네 명의 남자 중 어느 한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는 허점이 어느 한 사람의 허점인 것처럼 바뀌어 지면서 이 소설은 복잡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모두에게 해당되는 약점이지만 밖으로 표출되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 타인의 잘못을 자신이 단죄할 수 있다는 생각이 표면으로 드러나면서부터 소설은 흥미진진해 진다.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눴다면 해결될 일이 사소한 오해로 인하여 오랜 친구사이인 클라이브와 버넌의 우정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깊어진 감정의 골은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암스테르담]의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제목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 아주 짧은 문장이 기억나긴 하지만 나는 읽기를 마친 후에야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 마지막 승리자가 된 것은 희극적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단 말인가. [암스테르담]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저자는 스토리 전개 상 중요한 인물의 마지막과 덜 중요한 인물의 마지막을 극과 극으로 표현함으로써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짧지만 인간의 탐욕과 위선에 대해 정확하게 꼬집고 있는 이 소설 참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