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폐암이라면서요.
폐 끼친다. 폐가 된다. 혼자 생각 말고요.
그냥 나한테 폐 끼치세요. 나 다 알아요.
그날 밤, 차 끊겼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하고장례식장에 같이 있었잖아요.
그건 샘이 폐 끼친 거예요, 아니면 내가 폐 끼친 거예요?
됐어요. 우리 그냥 폐 끼쳐요. 누가 무슨 관계냐고 물으면 그래요.
서로 폐 끼치는 관계라고. 우리 그냥 그거 해요. - P-1

폐기 펠란은 다음과 같이 썼다. "라이브 퍼포먼스와 연극(‘실제 신체로하는 예술)은 이를 비논리적이고 분명히 한심한 투자로 만드는 재현경제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 연극과 퍼포먼스는 상실, 특히 죽음에 대한 예행연습이 간절한 우리의 정신적 필요에 응답하는지도 모른다."
Peggy Phelan, Mourning Sex: Performing Public Memories, London andNew York: Routledge, 1997, p.3. - P-1

영화평론가 손희정은 "인류가 종말했는데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묻고 철학자 존 그레이의 언어를 경유하여 답한다. "인류란
‘수십억 명의 개인으로 구성된 허구일 뿐이며, ‘인류 문명사‘가 이 ‘상상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강력한 지배적 허구"라는 것. 하여
"인류의 종말‘은 북반구 중심적 역사관의 종말에 가깝고, 인류가 종말했다고 해서 구체적 실체로서 인간이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손희정,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메멘토, 2024, 149~150쪽. - P-1

11 아미타브 고시, 김홍옥 옮김, 「대혼란의 시대』, 에코리브르, 2021, 42쪽.
소설가이자 인류학자 아마타브 고시는 근대 문학이 기후 위기를 다루는 데 실패한 까닭을 부르조아적 삶의 질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한개연성에 대한 강박에서 찾는다. 고시에 대한 임옥희의 독해는 고시의 논의가 <모든>과 어떤 지점에서 공명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아미타브 고시는 기후 위기와 자연 재앙은 합리적 개연성으로 설명할수 없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가능성은 필연적 개연성을 초과하는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결적인 개연성은 인간의 통제와 이해를 넘어선 재앙을 설명하는 문학적 장치로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연한 가능성에 지배되는 기후 위기를 합리적 개연성으로만 묘사하려 든다면, 그것은 기후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빈곤과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고시는 열등한 장르로 취급되어온 SF적인 상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임옥희, 「병리적인 시대에, 다른 상상으로」, <문학동네》, 2022년 가을호, 86쪽. - P-1

물론 ‘가족 하기‘가 모두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궁극적 대안이라는 것은 아니다. 정은의 고통도, 은수의 슬픔도 완전히사라지지는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고통과슬픔의 종결에 대해 우리는 예단할 수 없다. 이 글이 예준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기를 주저하는 것 또한 은수가 입 안 가득 머금고만 있는 그 이야기를, 정은조차 끝끝내 묻기를 주저하는그 이야기를 내가 감히 이 짧은 글에 요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 하기‘가 설령 모진 현실에서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슬픔과 아픔으로 마스크 속, 입 속에 묶어 두었던 우리의 혀는 서서히 꿈틀댈 수 있을 것이다.  - P-1

정은은 은수에게 자기 혀는 ‘은갈치맨치로 반짝반짝하는은의 혀‘이며 이는 외가로 이어져 온 특징이라며, 외증조할머니부터 외할머니, 어머니로 이어지는 ‘은의 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중에야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학교 급식실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정은은 이미조리흄(요리 매연) 때문에 발병하는대표적인 조리실 산재인폐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였고 그런까닭으로 백태가 심했던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은은참으로 꿋꿋하게 자신의 혀는 ‘은의 혀‘라고 주장한다.  - P-1

5 한국계 미국인 작가 캐시 박 홍의 자전적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마티,
2021)에 따르면, 시인 너새니얼 매키는 명사 ‘타자‘와 동사 ‘타자화하다‘를구별하여 논의를 전개했는데, 이 에세이 제목 또한 미국의 극작가 아미리 바라카에게서 빌려 온 것이다. 바라카는 "백인 음악가들이 흑인 음악으로 이득을 취한 역사를 가리켜 ‘명사를 동사로 변질시켰다"고 일갈했는데, 이를테면 "스윙은 음악에 반응한다는 의미의 동사로서 흑인들이탄생시킨 혁신의 산물이었으나, 백인 음악가들이 이를 탈취하여 거기에스윙이라는 상표를 갖다 붙였다"는 것(캐시 박 홍, 136~137쪽). 이 글은
‘명사에서 동사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이와 같은 일련의 목소리들에 크게 빚지고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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