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세상을 진지하게 관찰할 때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관찰 대상의 생명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P-1

예술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우리의 경험을 증폭시키고, 개인의 운명의 한계를넘어 동료 인간의 삶과 맞닿게 한다.
-조지 엘리엇, <독일 생활의 자연사> - P-1

좋은 글(책)은 언제나 작은 문으로 들어가서 큰 문으로 나온다.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디테일(4장)과 캐릭터 (5장)에 대한논의를 거쳐 결국 리얼리즘에 대한 비전(10장)으로마무리되는 것처럼 말이다. 리얼리즘의 어떤 기교 - P-1

5 팬들은 분개하겠지만, 예컨대 존 르 카레의 소설은 "관습의 시신을 담은 잘 만든 관"으로 평가절하된다. 한국어판(1쇄 기준)에서 이 대목은관습의 ‘시신‘이 아니라 ‘시선‘으로 오식돼 있다(《소설》, 235쪽).
6 나는 우드가 자신의 소설관을 웅변하는 과정에서 ‘리얼리즘‘, ‘진실‘,
‘삶다움‘ 같은 말들을 사용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여기면서도 불안하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대뜸 그게 뭔지 안다고 믿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도많기 때문이다. 우드가 인용하는 버지니아 울프처럼(《소설》, 245-6쪽),
‘삶‘이라는 관습적인 말에 정당한 불만을 품되 ‘삶‘에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는 일의 어려움과 위대함이 뭔지도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 P-1

《인생>의 모든 챕터가 중요하고 또 아름답지만, 그중 백미는 그의 비평관을 다룬 3장 ‘모든 것을 사8용하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평이 리뷰나 논문과어떻게 다른지 충분히 의식하지 않는 (나를 포함한)많은 비평가들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리뷰는 어떤 - P-1

TO 같은 얘길 내 식대로 적어본 오래된 버전이 있다. "영화 평론은 영화가 될 수 없고 음악 평론은 음악이 될 수 없지만 문학 평론은 문학이 될수 있다. 문학 평론이 가장 위대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문학평론은 그만큼 특수하다는 얘기다. ‘뭔가‘에 들러붙어서 바로 그 ‘뭔가‘
가 되는 유일한 글쓰기다." 《느낌의 공동체》, 문학동네, 2012, 306쪽.
II 특히 이 네 번째 항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주의 깊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비평은 "독자가 작품에 대해 자신과 비슷한 견해를 갖도록 유도하는 일"(155쪽)이라는 우드의 주장은, 비평이란 텍스트를 비판하면서 독자를 계몽하는 일이라고 믿는 이들의 관점과는 놀랍도록 다르다. 여기에서 ‘비판‘이란 좁은 의미의 비판, 즉 흠잡기를 뜻하는 게 아니라, 넓은 의미의 비판, 즉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전통 이래로 텍스트읽기의 가장 전문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으로 간주되어온 텍스트의 증상symptom을 발견하는 방법으로서의 비판 critique을 가리킨다. 우드가 그런 읽기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진지한 관찰》의 서문에서 그는비판으로서의 읽기(그는 ‘해체적 읽기‘라고 부르지만)가 갖는 생산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되, 그 독법이 언제나 텍스트가 ‘실패‘하기를 기대하는것처럼 보인다는 말로 그 편향과 한계를 지적하고, 다른 길도 필요하다는 점을 정당하게 제안하고 있다. 비판적 읽기가 근래 처한 곤경과 한계에 대해 반성을 요청하는 것이 소위 포스트크리틱 postcritique 논의이고 이런 맥락 속에서 우드의 독법이 가진 의의와 약점을 따져보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이 작업은 다른 곳에서 시도해보기로 한다. - P-1

모두 소설의 등장인물이다. 언급한 순서대로, 이사벨 아처: 헨리 제임스, 《여인의 초상》. 토미 윌헬름: 솔 벨로, <오늘을 잡아라》. 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프닌>, 페초린: 미하일 레르몬토프, 《우리 시대의 영웅》. 히카르두 헤이스: 주제 사마라구,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 - P-1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세속적 태도와 종교적태도 사이를, 삶의 순간들과 삶의 형식이라 할 만한 것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일이다. 소설의 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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