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1971년 부산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한 지 3년 만에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1983년조선일보에 입사,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일했다. 월간조선 대표이사를 끝으로 은퇴한 뒤 현재는 조갑제닷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과 박정희 대통령 전집 <박정희> 13권, <기다린 날이 왔어요!: 엄마들이 눈물로 지켜낸 가수 황영웅 이야기》등 많은 저서를 출간했다. - P-1

유시춘국어 교사와 작가로 활동하다가 1985년 이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 여러 민주화운동 단체에서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국문화정책연구소이사장, 문재인 정부 때부터 현재까지 EBS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그립다》 《김대중 자서전》 《우리 강물이 되어> <안개 너머청진항》 등 많은 저서·공저서·소설 등을 출간했다. - P-1

오인환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역임했다. 1992년 민자당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정치특별보좌역을 맡으면서 정계로 자리를 옮겼고, 김영삼 대통령 임기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문민정부와 함께하며 공보처장관을 지냈다. 대통령 임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역대 최장수 장관이다. 김영삼 재평가> <박정희의 시간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삶과 국가> <고종시대의 리더십> 등 많은 저서를 출간했다. - P-1

최석호

개항도시 인문학 대통령을 말하다‘의 기획자이다. 한국레저경영연구소를 설립하고 고도현대화·문화사회사·관광세계화·문명화과정등을 연구한다. 복합문화공간 개항도시를 만들어서 책마을(서점).
예술마을(전시관)·커피마을(커피숍)을 경영하고 있다. 주요 저서및 공저서로 《골목길 역사산책: 한국사편> <미국 엔터테인먼트 전성시대》 《중국인이 몰려온다!: 천만 관광객 시대의 한국관광》 등이있다. - P-1

비상계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바로 이어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했습니다. 시민들은 계엄군을 밀어냈습니다. 여야국회의원 190명은 비상계엄해제요구안을 가결했습니다. 구군부와 신군부 군부독재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과 민주주의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달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뭐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개항도시 인문학 대통령을 말하다‘를 기획했습니다. - P-1

노무현 대통령 5년을 돌아보면 어긋난 게 정말 많았는데, 가장 큰게 대통령과 국민의 어긋남이었어요. 이 어긋남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재임중에는 국정수행 지지율이 아주 낮았는데, 퇴임한 뒤에는 인기가 막 올라갔고, 돌아가시고 나서는 국민이 제일 좋아하는 대통령이 됐습니다. - P-1

언론개혁은 더 안 됐습니다. 그때는 청와대나 정부 부처 기자실에서기자들이 담합해서 특정 방향으로 몰고 나가곤 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문제를 제기하고 미국식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신문 방송의 기자들이 그걸 언론탄압이라고 비난했죠. 브리핑 룸 사용을 거부하면서 정부청사복도 바닥에 앉아 일을 하는 진풍경을 빚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 P-1

떠오르는순서대로 적어 보니, 검찰개혁하고 언론개혁이 맨 먼저였습니다. 이것 때문에 임기 내내 어마어마하게 시끄러웠죠. 검사와의 대화는 성공할 수 없는 기획이었어요. 검사들은 그저 권력으로 찍어 눌러야하는 존재인데 대통령과 동등한 공무원으로 대우를 해준 거잖아요. 동등한 존재로!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서 수평적으로 대화해보자고 토론회를 했는데, 남은 건 검사들은 대화할 줄 모르는 집단이라는사실뿐이었어요. - P-1

양극화

세 번째 어긋남은 ‘양극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2002년 대선 때는 이슈가 아니었어요, 양극화 해소하라고 노무현을 대통령 만들지는 않았어요. 동서화합·국민통합·정치개혁 같은 게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이었죠.
IMF 이후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대선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지는 않았어요. - P-1

소위 대연정 파문도 빠뜨릴 수 없는 어긋남의 사례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사태였어요, 그때 제가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이었어요. 당 대표 선거를 해서 1등은 당 대표를 하고 2·3·4등은 최고위원을하는 제도였는데, 문희상 의원이 당 대표였죠. 대표실에 최고위원 회의를 하러 갔는데 다들 신문을 펴고 계신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 몰랐어요.
어떤 신문이 특종 보도를 한 것이라서요. 보니까 신문 일면에 대문짝만하게 대연정 기사가 나 있었어요. - P-1

그런데 독일은 우리와 달리 민족이 분단되진 않았어요. 전쟁을 안 했기 때문이죠. 우리는 북한이 침략해서 한국전쟁이 터졌고, 국제전으로비화하면서 무려 300만 명의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그 전쟁을 겪으면서원한이 쌓였죠. 민족이 분단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통일은 독일보다훨씬 힘듭니다. 국가를 통일하고 국토를 통합하려면 먼저 민족을 통합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국전쟁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치유하는 과정이있어야만 해요. - P-1

보수 진영에서 국민이 좋아하는 대통령은 박정희밖에 없어요. 돌아가신지가 몇 년 됐습니까? 45년 넘었습니다. 일제강점기보다 긴 세월이 지났는데, 국힘당이 내세울 수 있는 대통령은 여전히 박정희 한 사람뿐이에요. 국민 네 명 중에 한 명이 제일 좋아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어요. 무시하면 안 되고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하는 것이 옳지도 않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P-1

"세상을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물을 가르고 온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 말씀은, 제가 생각하기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세상이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따름이지 돌아간 게 아니었어요. 대통령께서 생존해 계셔서 이명박이 어떻게 임기말까지 갔는지, 박근혜 당선과 탄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남북관계와 한미 관계와 북미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국 문화가 어떻게 세계로 퍼져 나가는지 보셨다면 생각을 바꾸셨을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때 스크린쿼터 폐지 때문에 문화인들이 크게 항의를 했잖아요. 그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뭐든 마음먹으면 다 잘하는 국민인데, 왜 자신이 없습니까? 지금까지 다 잘했잖아요. 드라마와 영화도잘할수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영상이 남아 있어요. - P-1

해석을 더 상세하게 하면 이런 말이었죠, "대통령이 나처럼 하면 힘들어집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주세요. 나라와 국민에게 진짜 필요하지만 국민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과제에 대해서는 밖에서 말해야 합니다. 그것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을 해야 합니다. 누가 밖에서 그런말을 하고 국민이 들어야 대통령이 사회 진보에 기여할 수 있어요."
2009년 4월 20일 마지막으로 둘이 만났을 때 그렇게 말씀하셔서 제가여쭈었어요. "그럼 정치는 누가 합니까?"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어요, "정치는 정치밖에는 잘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 하면 돼. 다른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걸 하는 게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더 큰 기여가 될 수도있어. 당신은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니까 책 쓰고 강의하고 젊은이들과소통하는 게 좋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고, 나는 그런 거 - P-1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이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 "난 괜찮아"입니다. 가슴에 총을 맞고 관통상을입고 등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을 때, 그 옆에 있던 가수 누구죠?
심수봉, 신재순 여성 두 사람이 손수건 같은 것도 없고 손으로 그냥 막았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샘솟듯 했다고 합니다. 차지철이 병풍 뒤에숨어서 "각하, 괜찮습니까?"라고 물으니까 "난 괜찮아"라고 했습니다.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피를 쏟으면서 "난 괜찮아"라고 한다는게 이게 말이됩니까?
그래서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제가 신재순·심수봉 두 분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김계원 비서실장한테 물어봤어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말입니다.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난 괜찮으니까 자네들은 피하게"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신재순 씨가 당시에 느꼈던 감정도 "역시 대통령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를 생각해 주는구나"하는 것이었다고 그러더라고
요. - P-1

여기서 박정희 대통령은 밀어붙입니다. 중화학공업 건설을 그대로 밀고나가자. 그러면 필요한 달러는 어디서 버느냐? 그때 오일 달러가 많이모이니까 중동국가들이 건설 붐이 일어났습니다. 1973년부터 기름값이뛰면서 돈이 넘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중동 국가들이 항만도 건설하고 아파트도 짓고 막 건설 붐이 일어났어요.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중동으로 진출을 합니다. 그래서 오일 머니를 벌기 시작해요. 1977년에 가면중동에서 건설회사들이 벌어들인 달러로 중동에서 석유를 사오고도 남게 됩니다. 호랑이 굴로 들어간거죠. 그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그때 만약 보통 지도자처럼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 건설을 접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느 정도 수준에서 살고 있을까요? 아마 말레이시아나 태국 정도일 겁니다. 근데 말레이시아 태국 정도로 사는게요, 그게 실패한 나라가 아닙니다. 말레이시아나 태국도 괜찮은 나라예요. 그러나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선택으로 해서 그들 나라보다 훨씬더 앞선 나라로 가버렸죠.  - P-1

김대중 대통령님은 언어가 유머러스할때가 많습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인간의 거처입니다." 말은그 사람 자체예요. 우리가 모든 생각을 말에 담아내잖아요. 1987년 6월10일 항쟁이 일어나고 6월 16일 평화대행진을 해서 한 번 더 폭발합니다.
그때 전두환이 계엄을 선포하려고 합니다. 계엄령 그러니까 여러분 오싹하죠. 몇 달 전 생각도 나고요. 그 계엄령 이후에 지금 처음입니다. 계엄령 생각하면 저도 정말 기가 막힌 일들이 있죠. 저도 참 제 동생들과 더불어 전두환 밑에서 고문당해서 죽지 않은 걸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 P-1

김영삼 대통령은 일관성이 특징입니다. 거제도에서 배를 10척이나가진부자 아버지를 둔 아주 유복한 사람이었어요. 1954년 스물여섯 살 나이에 거제도에서 출마해서 당선됩니다. 그때는 자유당 공천을 받고 나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할아버지가 어업을 시작하고 물려받은 아버지가 이를 크게 키우며 토호가 됐죠. 토호의 아들이고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왔고 그래서 기반이 딱 확고하니까 당선이 된 겁니다. 그래서 정계에 들어갔죠. 그런데 얼마 있다가 보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삼선 개헌을하려고 해요. 영구집권은 안 된다. 그래서 자유당에서 나옵니다. - P-1

이승만 박사가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못했다고 그래서 지금도 욕을 먹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독재를 성공적으로 청산했어요. 역사에 남는 일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박정희 다음으로 큰일을한 거죠. 그런데도 외환위기 때문인지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있어요. - P-1

금융실명제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를 제거하고 군부독재를 뿌리 뽑아서 민주화기반을 확고하게 다졌습니다. 이어서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 긴급 재정명령권 제16호를 발동해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했습니다. - P-1

좋아하는 음식이나 물건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도 조사했는데,
2024년 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흥민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네요. 무려 49%나 됩니다. 코미디언 중에서는 유재석(35%)을, 기업인 중에는 정주영 회장(22%)을, 영화배우는 최민식 (8.1%)을, 탤런트는 김수현(6.4%)을, 소설가는 박경리 (6%)를 좋아한다고 답했고요.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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