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는 능력주의의 실패에 분노하는 엘리트들, 다른 한편에는 능력주의에따라 희망이 없다며 절망하는 청년들, 그리고 점점 더 유치해지고 비겁해지면서자기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초‘엘리트 관료 집단들. 교육에 대한 피해서사만 난무하는 가운데 공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분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지현 선생과 나 모두에게 매우 절박한 질문이다.
공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 둘이 근거하고있는 진료실과 교실의 존재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우리‘가 왜존재해야 하고, 우리가 서 있는 교실은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찾기 위한 대화였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들―때로는 학생, 때로는 청소년과청년, 때로는 환자의 모습으로-과 그들을 통해 한국 사회를 읽었다. 이것은오로지 교실과 진료실에서 그들을 더 의미 있게 만나기 위함이었다. 엄기호 - P-1

진짜 공부는 무엇일까. 공부가 우리에게 주려는 것은, 우리가 공부로 얻을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부는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한 계속하는 것이다.
끝없는 호기심이 필요하고, 보이지 않는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도함께 해야 한다. 지금 뭐라도 되어가고 있고 어느새 꽤 단단해진다는 걸 언젠가깨달으리라 믿어야 한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사고 시스템의 핵심에 자리잡은 공부 담론을 한 번에 부정하고 곧바로 벗어나기란 어렵다. 이 담론이 이미촘촘하고 단단하게 개인과 사회 전체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문제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조금씩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향성이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음 10년의 시작을 위해. 하지현 - P-1

교육부가 2018년에 도입 계획을 발표한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선택한 과목에 따라 교실을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제도는2020년 마이스터고, 2022년 특성화고에 이어 2025년 3월부터 전국 모든 고교1학년 과정에 전면 적용되었다. 입시 중심의 경직된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의 성장을도모하고, 보다 유연하고 개별화된 교육과 수평적 다양화를 지향하는 것이 핵심취지다. 고교학점제의 도입 이후 수도권과 비수도권 학교 간 교육 여건의 격차가드러나고, 진로가 뚜렷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과목 선택 과정 자체가 부담이 될 수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P-1

 한국의 학교는 등급제가 아니지만, 실제로는 학력에따라 학교가 서열화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학력 서열과계급이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게다가지금 아이들 사이에서는 ‘학급‘이라는 개념도 별로 없어요. - P-1

학생들 말을 들어보면 소셜 믹싱, 그러니까 서로 다른배경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처음 경험하는 곳이 군대라고하더라고요. - P-1

직업 윤리, 소명 의식보다는 노동이 단위 시간당어느 정도의 보상을 주는지가 중요해졌어요. ‘워라밸‘을중요하게 여기지요. 라이프 안에 워크가 있는 건데, 워크와라이프를 별개로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제로섬 게임이되어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해 보는 삶을 살고 있다는단순한 산수를 하게 됩니다. 내 라이프가 갉아먹히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ㅜㅜ - P-1

기호


바우만의 표현대로 한다면 이런 삶은 전형적으로
‘파편화된 삶‘입니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딱 분리된삶이요. 앞서 말했듯이 생애사적 기획으로 노동을 통해서도
‘나‘를 실현시키고 통합해야 하는데, 일은 그냥 돈 버는수단이라고 생각하고 분리해버려요. 근대에는 이런 세태를불행이라고 정의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전혀 불행하다고느끼지 않아요. 이런 삶이 너무 당연하니까요. 행복하기위해서는 이 도구화된 직업, 도구화된 일에 들이는 시간을줄여야 하니까요.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를 너무 잘 알고있는 것이지요. 직업을 통한 자아 실현이 판타지라는 걸너무 잘 알고 있어요. - P-1

현 경쟁에서 우위에 선 사람이 보이는 주된 감정이불안이라면, 열세에 있는 사람은 주로 열패감에서 비롯된분노를 가지고 있어요. 심각한 경쟁 세계에 있다 보면 한번의 실패를 곧 존재의 붕괴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물론전혀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지만,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보면 모든 실패가 반드시 치명적인 건 아니에요. 그런데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하면 다시 시도할 용기조차 잃어버릴수 있어요. 그런 선택은 안타까워요. 실패가 그다음을가능하게 하고, 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가참 어려운 상황이에요. - P-1

기호실패해도 된다는 말이 지금 너무 여기저기서 상투적으로쓰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많은 학교들이 요즘
‘실패‘를 교과 과정 안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어요.
「모멸감]‘을 쓴 김찬호 교수가 이야기한 것인데, 이 방식을먼저 시도한 곳 중 하나가 카이스트예요. - P-1

이런 점에서 학생들에게 호불호가 극도로 나뉘는 수업은성공적인 수업이라고 봐야 해요. 도전적인 성향의 학생은강의 평가 점수를 후하게 주고, 낯설고 불편한 수업 방식에초점을 맞춘 학생은 점수를 아주 박하게 주니까요. 그런데평가 점수에 평균을 내면 중간에도 못 미치는 점수가나옵니다. 그러면 누가 도전적인 수업을 하려고 하겠어요?
그러면서도 보수적인 수업을 하면 모험 정신이 없다는 말을듣지요. - P-1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공부 자체로부터 오는 기쁨을잘 느끼지 못해요. 공부 자체로부터 오는 기쁨을 느끼기위해서는 흐름, 과정이라는 게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공부를할 때는 흐름을 타는 데서 오는 어려움들을 감수할 수밖에없어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공부를 성공하고만 결합해서결과를 만들어내야 하고, 결과를 통해서 보상을 받아야한다고 믿어요. 보상 없이는 전혀 만족하지 못합니다. - P-1

삶의 주도성 되찾기 - P-1

특히 직업 세습을 통한 계급 재생산은 한국 중산층의엄청난 목표입니다. 제가 최근에 예술계 학교에 몸담으면서본 것 중에 하나는요,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의 부모가소설가나 동화 작가 같은 예술인인 경우가 과거보다많아졌어요. 문화 자본과 사회 자본이 세습의 연결고리를 타고 내려온 거예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많은것을 풍부하게 보고 들은 아이가 부모의 재능, 그러니까유전자까지 물려받았다면 금상첨화이지요. 요즘 문화계에서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요.
가장 먼저 세습을 시도한 직업이 교수, 의사,
법조인이었어요. 그때는 다른 분야에 문화 자본이나 사회자본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대부분의 직역에서, 특히 소득이 높은 직역에서 사회 자본과문화 자본이 세습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다들 - P-1

흥미로운 것은 세습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도 없고 사회도없고 심지어 ‘나‘도 없어요. 초월이 사라지니까 겸손도사라지고 ‘나‘만 남아서 자아가 비대해지는데, 여기서 ‘나‘의실체는 자기 자신으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가족이나 직역등의 어떤 집단 정체성입니다. 권력화된 집단이나 이익집단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항상 바라보는 것이지요.
가끔 소위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이 대학과 자신의정체성을 강력하게 동일시하면서 다른 집단에 배타적이고차별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볼 때가 있어요. 이전에는비수도권 분교나 타 대학에 대한 우월 의식과 차별이 보이지않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작동했으나 이제는 노골적으로드러내더군요. 소위 말하는 ‘입결(입시 결과)‘을 내세우면서자신과 그들이 결코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면서요. - P-1

지현맞아요. 어느 순간부터 직역들이 ‘제2의 가족‘을 만들고있어요.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어요. 이번 의정 사태도의사들이 외부인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뭉쳤지요.
정권이 바뀌면서 여권 인사를 대거 사면하기도 하고요.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논란도 마찬가지예요. 자신들의입장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고 있어요. - P-1

반면 86세대는 자신의 기대치를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자식들은 커갈수록 그 모순이 보이기 시작해요. ‘아버지는진보적인 사람이라면서 돈 되게 밝히네‘, ‘너무 경쟁적이고,
경제관은 또 보수적이고 주식에 열중하고 그러네, 이런모순이 아이들로 하여금 반항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부모와의 갈등을 만들고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혼란을가져오기도 하고요. - P-1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속계급사회(inheritocracy)의청년들은 ‘해서 뭐 하나‘ 같은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어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지 못해서 이미 늦었다는 마음, 그리고물려받을 자산이 없으니 해봤자 벽을 넘을 수 없다는열패감이 결합해 분노로 표출되고 있어요. - P-1

*시사IN 한국리서치가 2025년에 실시한 ‘6.3 대선 이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에따르면, 청년 남성은 다른 집단보다 평균적으로 더 보수적이며 경제적 지위가상층일수록 보수성이 두드러진다. 김창환 캔자스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확인하기 위해 가구소득·가구자산·주관적 계층 인식을 종합한 ‘경제적 지위지표‘를 만들고, 네 가지 항목 ①국민복지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② 복지 향상을 위해 추가 세금을 낼 의향이 없다 ③장애인 의무 고용제에 반대한다④이재명 정부에서 불평등 완화와 복지 확증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으로
‘경제정책 보수성 지수‘를 만들어 두 변수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청년 남성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능력주의에 근거해서 경제적 배분을판단한다. 현재의 어려운 처지는 능력의 결과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인위적인 재분배는 정당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 P-1

*교육부는 2014년 9월 ‘2015년 교육 과정 개정‘을 발표하며 문·이과 통합 교육을전면에 내세웠다. 고교에서는 공통 과목(국어·수학·영어·한국사·통합사회·통합과학 등)이 신설되었고 학생은 적성에 따라 선택 과목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 또한 2022년도부터 ‘공통+선택 과목‘의 구조로 전환되며문·이과 구분 없이 탐구 영역의 선택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문·이과가 정말통합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거의 없다. 대학이 여전히 인문·자연계열을 나눠 선발하기 때문에 입시 교육 또한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문·이과의 유불리 문제가 제기되었다. 다수 대학에서 과학 탐구 선택자만자연계열 학과에 지원이 가능하다고 공표한 한편, 이과생들은 높은 수학 과목 표준점수로 인문·사회 계열 학과에 교차 지원하고 있다. 2024년, 교육부는 이과생의문과 교차 지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질적인 방안 없이 일부 대학이자연계열 선택 과목 지정을 폐지하는 대응으로 마무리되었다. 통합 교육은학생들이 문·이과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계열에 지원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도입되었으나, 사실상 문과생의 자연 계열 진학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매우 불리한 것으로 나타나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2027학년도 수능 또한 기존 체제 그대로 진행하기로 발표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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