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소설가. 1995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 장편소설로 『작별인사『살인자의 기억법』『검은 꽃』『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빛의 제국」 「아랑은 왜』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호출이 있고, 산문 단 한 번의 삶』 『여행의 이유』 『오래준비해온 대답」 「다다다』 등을 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수상했다. 독일과 일본에서 각각 독립출판사문학상과 번역대상을 받았다. 30여 개국에 작품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 - P-1
어차피 죽을 인생을 최선을 다해살아가는 이유 - P-1
노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혼자죽는 것‘이라고들 답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누구에게도자신의 죽음이 인지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버려지는 무연사가 가장 두렵다고 한다. 그들은 마치 죽은 뒤에도 살아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 P-1
우울증을 겪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자살률이매우 높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우울증에 걸리면 세상과인간관계에 대해 비관적이 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들에사로잡힌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나는 철저하게혼자이며 무가치한 존재다. 어차피 인간은 결국 죽는다. 아무도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 P-1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유명한 말이있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면 죄뿐만 아니라 인간을 함께 미워하는 일이 의외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그들이 우리 눈앞에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 P-1
자본주의사회의 마케팅이라는 것은 고객이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던 것도 필요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면 고객에게 이미 있을 것이다. 아직 안 샀다는 것은 아직 그게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팀장은 고객이 물건을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식으로 눙치고 있었다. - P-1
"당신은 나무입니다. 나무라서 물을 가까이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큰 바위가 짓누르고 있습니다. 바위가 나무를 누르고 있으니 어떻겠습니까? 화가 나겠지요. 당신은 지금 세상에 대해 무척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자라게 마련이고 바위는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나이를 먹을수록 부드러워지고 유순해질 겁니다." - P-1
우리 가족에게 처음 ‘집‘이 생긴 건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다. 잠실의 열세 평짜리 아파트였는데 그나마도 세입자와 동거하는 형태였다. 두 개의 방 중에서 큰 - P-1
명예 퇴직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자 그는 가장 먼저달려가 도장을 찍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리곤 허름한 옷을 입고 새벽같이 어딘가로 나갔다가 저녁 무렵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막노동을 시작했다. 마음이 너무 편하다. 아침에 출근해서 일 좀 하다가 새참 먹고 일좀 더 하다가 점심 먹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퇴근이다. 아무것도 신경쓸 게 없고 자기 맡은 일만 하면 그만이다." - P-1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앎에 갇혀 있다. - P-1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이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 저는 그것마저도 - P-1
비관적 현실주의자로 살아가는 삶은 너무 답답하고 지루할까요? 오히려 낙관주의자로 살아가는 삶에 함정이더 많습니다. 낙관주의는 모든 게 잘될 때는 괜찮지만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미국에 우울증 환자가왜 이리 많은가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긍정적 사고‘ 와 ‘낙관적 태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그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모두가 긍정적으로 활발하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거기서 자신만 뒤처진것으로 보일 때, 우리는 급격하게 우울해집니다. 봄에 우울증이 늘어나고 자살률도 높아지는 사실 역시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햇살은 따사롭고 뉴스에는 나들이를 나온행복한 가족들의 모습만 보이지요. 나만 불행하다는 느낌, 이것이 깊은 우울로 우리를 끌고 들어갑니다. - P-1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관적 현실주의에 두되, 삶의 윤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동조될때,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저는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 P-1
"아니, 지금보다 더 열심히 써." "소설가는 봉제 공장 노동자가 아니야. 계속 일한다고생산량이 늘지는 않아." "어쨌든 그만둬. 너무 힘들어 보여. 그리고 아직 젊을때, 좀더 소설에 집중해." "공무원연금은 어떡하지? 건강보험은? 매달 나오는 월급은? 성과급은? 그리고 직장이 있기 때문에, 아니 교수이기 때문에 받는 이런저런 눈에 보이지 않는 특혜들은? 이 아파트를 살 때 꾼 주택담보 대출금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생활비를 줄이고 어떻게든 살아가면 돼. 신혼 때는 그런 것 없이도 잘만 살았잖아." "애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도 있어." "잃는 게 더 많을 거야. 내가 당신을 알아. 당신은 눈앞에 있는 모두를 만족시켜야 되는 사람이야. 그게 얼마나피곤한 일이야? 왜 당신이 그런 일을 해야 돼? 학생들은어차피 자기가 알아서 커나가게 돼 있어. 선생이 누구든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안 그래?" - P-1
은행에서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나는 휴대폰요금, 아파트 관리비, 수도요금, 가스요금, 케이블TV 요금, 신문구독료, 인터넷요금의 자동이체를 해지하고 남은 요금을 정산했다. 그 밖에도 실로 무수한 것들이 주거래통장에 걸려있었다. 은행 직원은 서식 한 장을 내밀더니 자동이체를해지하고 싶은 거래 내역을 쓰라고 했다. 그걸 창구에서일일이 쓰고 있자면 한 시간도 더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종이 위에 이렇게 썼다. ‘전부 해지‘ 그래도 채 사라지지 않는 거래들이 남아 한동안은 성가셨다. - P-1
독설가로 유명했던 마크 트웨인은 평생 골초였다. 생활은 불규칙했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인쇄소 견습공,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 광산 기사, 신문기자 등으로일했다. 그런데 이 양반이 19세기 말에 증기선을 타고 적도를 따라 전 세계를 여행한 일이 있다. 그러면서 쓴 책이 그의 마지막 여행기 마크 트웨인의 19세기 세계일주다. - P-1
"나쁜 습관이란 젊을 때부터 몸에 들여놓아야 나이가들고 병이 들었을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보험회사에선가 조사를 해보니 나이가 들수록, 즉 청년보다는 장년이, 장년보다는 노년이 건강하고 체력이 좋더란다. 혈압이 높을수록 건강하다는 결과도 나왔다고 한다. 이럴 수가! 그렇다면 건강해지기 위해선 일단 빨리 나이를 먹고 혈압을 높여야 하나? 물론 아니다. 이런 통계는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건강에대한 염려가 많은 중년과 노년은 젊은층에 비해 운동과섭생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더 건강한 것이고 젊은층은음주와 흡연은 많이 하고 노동 강도도 높기 때문에 그만큼 몸이 허약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조사 결과는 마크트웨인의 독설처럼 젊은이들에겐 은밀한 기쁨과 우월감을 준다. 그것은 아직 ‘버릴‘ 몸과 탕진할 젊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 P-1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이들은 하나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런 변화의 흐름•을 주도한 것은 1988년에 창간한 한겨레신문이었다. 숙련된 식자공들을 구할 수가 없었던 이 신생 신문은 새롭게등장한 컴퓨터 조판 방식에 의지하기로 결정했다. CTS 시스템이라 불렸던 이 방식은 식자공을 거의 필요로 하지않았다. 기자가 컴퓨터 자판으로 기사를 입력하면 편집기자가 모니터를 보면서 판을 짜고 이를 바탕으로 바로 인쇄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곧이어 다른 신문들도 부분적으로 CTS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고도의 숙련 노동자인 식자공들이 일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약직으로 전환시킨 후 나중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고했다. 나는 이들을 취재해 논문을 썼고 이것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식자공들이 비정규직에서마저 해고되어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일160 - P-1
리파리섬은 인구가 1만 800명쯤 되는 섬으로 에올리에제도의 중심이다. 시칠리아의 북쪽 바다, 티레니아해에 있으며 화산도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제도를 만들었는데 폼페이를 묻어버린 베수비오 화산과 같은 화산대에 있다. 리파리 바로 이웃 섬은 불카노 Vulcano로, 이름에서 짐작할 수있듯이 역시 화산섬이다. 이 섬과 제도의 막내라 할 수 있는 스트롬볼리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활화산이다. - P-1
신뢰의 비용이 적은 곳이기 때문에 창업하는 사람의 몸도 가벼울 수밖에 없다. 도쿄의 젊은이들은 참 간단하게도 가게를 차리는 것 같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취향으로 가꿔가다가 어느 경지에 이르면 그것을 남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취향을 남과 공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상점을여는 것이다. 프랑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테이블 두개짜리 식당을 내고 빈티지 옷을 잘 고르는 사람은 빈티지 옷가게를 낸다. 커피를 좋아하면 원두를 직접 갈아 내리는 작은 카페를 차린다. 장난감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되면 드디어는 팔기 시작한다. 도쿄의 젊은이들을 관찰해 - P-1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교수들에게 "당신은 동료 교수에 비해 더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80퍼센트가 넘는 교수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중 적어도 30퍼센트 이상은 착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자신이 다른 운전자에 비해 운전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는 연구도 있다. - P-1
종로에 나가면 ‘도나 기를 아십니까‘라고 말하며 접근하는 종교인들이 있다. 죽은 이의 영혼이 내 어깨에 앉아있기 때문에 삶이 피곤한 거라고 단언하는 이들.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지나쳐가지만, 그들의 말이 비유라면 영그른 말도 아니다. 모든 인간은 이미 죽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어깨가 늘 그렇게 무겁다는 것. 이 세상에는 먼저 죽은 자들의 몫이 있다는 것. 한열을 떠올릴 때면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 P-1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P-1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마스터>는 부모와 자식 간의이런 관계에 대한 비유로 가득하다. 주인공 프레디는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있는 남자다. 그가 제대로된 부모를 갖지 못했다는 배경은 영화 중반에야 밝혀지지만 관객들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그가 ‘후레자식‘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부끄러움을 모른 채 욕망에 충실하다. 해군 병사들이 모래로 만들어놓은 여자 위에 올라타 민망한 방아질을 하는 남자다. 그의 노골적인 행동에 젊은 동료 병사들마저 눈살을 찌푸린다. 또한 그는 자기만의 술을 제조하고 그 술에 늘 취해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인물이다. 프레디를 연기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눈에서는 언제나광기가 번뜩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으로 독 - P-1
이십대는 몸으로, 사십대는 머리로 산다. 살아보니 둘다 나름대로 좋았다. 이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찍을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내가 어쩌면 살았을 수도 있었을또 다른 삶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 P-1
스팅은 노래한다. How fragile we are.‘ 우리는 얼마나약한가. 우리는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가. 어쿠스틱의 선율에 담아 스팅은 담담하게 노래한다. 우리는 얼마나 약한가. 그렇다. 우리는 약하다. 잘 깨진다. 박스에 담아 어딘가로 전송하기엔 너무 여리다. 사람이란 조심스럽게 전송되어야 하는 존재다.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서도 안 되고 60도 이상의 열을 가해서도 안 된다. 날 - P-1
혼자만의 믿음에 갇혀 있는 존재는 어린아이와 같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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