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생강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 P-1

입에서는 기에꿀 기에꿀 소리만 나왔다. - P-1

굿이어 웰트


새 구두는 계속 걷고 싶어하는데 이제 와서 발을 빼기가미안해졌다 대관령을 넘어 한참을 걷다보면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있는 푸른 초원이 나오고 여기저기서 소 울음소리가 난다 쇠똥냄새가 난다 이왕 이렇게 된거네 잎 클로버나 찾자 풀밭을 더듬다가 맛있어 보이는 풀을 뜯어먹고 젖소들 사이를 왔다갔다 따듯한 햇살을 만끽하는 평화로운 주말 오후인데 갑자기 트럭이 나타나 고리로 내 코청을 꿰더니 어디론가 실어갔다 - P-1

캐시미어 100

따듯한 나라에서 만든 스웨터를 샀다 주문하자마자 벨이울려 나가보니 삐쩍 곯은 염소 한 마리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털이 다 깎이고 군데군데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전화로 항의했지만 연신 사과만 할뿐 해외 직배송이라 다시 보내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문밖의 염소는 억울한 표정으로 문짝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선 집에 들여 마시멜로를 띄운 핫초코를 마시게 한다 가만히 내 눈치를 보더니 식탁에 앉은 채로 존다 내 스웨터는남쪽 섬에서 짜이는 중이다 염소 털에 파묻힌 직공들은 땀이 흐르는 한여름 속에 있다 나는 애인도 없고 새 옷을 사서 따듯한 겨울을 보내려던 것뿐인데 히말라야에서 온 난민과 방을 같이 써야 한다 냄새나고 코를 고는 염소 한 마리와 - P-1



나는 빵이다 선언을 하자 지나가던 제빵사가 뻥치지 말라며 내 몸에 식칼을 꽂았다 나는 천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다음날 나는 멀쩡한 빵으로 다시 태어났다 기뻐서 뛰어다니다가 막 오븐에서 나온 빵틀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두개골이 박살났다 그래서 죽었다 다음날 나는 진짜 빵이 되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만히누워 누군가 날 먹어버리길 기다리는 조신한 빵이 되었다 - P-1

스키니


아웃렛에 가서 어울리지 않게 스키니 청바지를 입어보았다 폼 잰다고 호주머니에 넣은 손이 빠지지 않는다 점장과점원이 달라붙어 옷을 회수하려고 하지만 아무리 해도 무리다 바닥에서 버둥거리다가 이대로 구렁이가 돼서 슬쩍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돈이 없다 나는 스키니 청바지에 잡아먹힌 남자를 연기한다 행위예술이다 관람객들이 땀범벅이 된 스키니 청바지 인간을 보러 구름떼처럼 모인다 카운터가 붐비고 장사가 성행한다 오줌을 지릴때쯤 폐점 시간이 되어 나는 불 꺼진 쇼윈도 안 마네킹으로다시 태어났다 - P-1

얼굴

콧구멍을 파다가 일이 커져 얼굴을 붙잡고 숟가락으로 파내기 시작했는데 파면 팔수록 쾌감이 생겨 무섭지만 돌아갈수 없고 얼굴은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아늑한 굴과 같아 자꾸 어디론가 연결될 것만 같으면서도 또 옴팡한 무덤 속 같고 얼굴은 굴이라네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숟가락질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내 잘생긴 코가 없어졌다는 걸 깨닫고서는막 슬퍼지려는데 예전에 지었던 슬픈 표정이 잘 떠오르지않아 축축한 얼굴의 굴속에서 혼자 통곡을 했다 - P-1

기울기

나는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져서 걸어다닌다 의자에 앉아기울어져 졸기도 한다 진짜 기울어졌나 거울을 갸우뚱 바라보다 진짜 기울어진다 비탈에 서 있는 것처럼 구부정하게기울고 척추를 바로 세워도 조금씩 기울고 기울어져 기우는중이다 무너지는 중인가 쓰러지는 중이다 비스듬히 중력을버티는 중이다 기우는 운명을 한탄하며 우는 중이다 울면서 기우는 중이다 오래 기울면 우는 것이다 기울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기울기에 갇혀 울다 지쳐 졸기도 한다 기울어지면 기울어진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 P-1

당나귀


가끔 어머니는 나를 보고 귀가 좀 컸으면 하고 아쉬워한다 귀가 작은 나는 풀이 죽는다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가 큰 귀를 달고 나와 보란듯이 그 큰 귀를 세우고 뛰어다닐 텐데 그러면 사람들이 소리치겠지 세상에 저빛나는 귀 좀 봐! 의기양양해져 어머니를 등에 태우고 달리면 신이 나겠다 - P-1

개똥


내 주위를 맴도는 개가 있다 개는 내 귓속에 말한다 너는내가 싼 똥이야 금방이라도 먹어버릴 수 있지 그러면 내가말한다 나는 개고기를 좋아해 너를 먹고 똥을 싸겠어 누가먼저 개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똥 같은 상황임은 분명하다 이것저것 훈계하는 개 때문에 짜증도 나지만 또 개가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기도하지만 이제는 개가 없으면 쓸쓸할 거 같다 - P-1

블랙아웃

나는 검은 줄 하나를 질질 끌고 다닌다 몇 해 전까지 그 끝에 개가 매달려 있었고 비가 몹시 오는 날 나는 정신없이 술에 취해 다 잃어버렸다 애완하는 자랑스러운 개였는데 웃기도 잘하고 나 대신 갈 곳을 정해주고 머물 곳을 일러주던 유일한 친구였는데 그때부터 죄책감에 술을 끊고 산다 캄캄한밤이면 골목에서 걸어나올 것만 같아 버리지 못하는 검은줄이 내 기다림의 형식 나는 줄 끝에 매달려 산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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