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호
구윤재는 마치 영화의 롱테이크 기법처럼 눈앞의 세계를 절제된시선으로 오래 응시하면서, 멀리 있는 세계에 대한 낯선 기억과풍경을 불현듯 불러온다. ‘노미‘ ‘모루‘ ‘노루‘ ‘티피‘ 등 호출되는이름들은 주체와 세계 사이의 미세한 틈을 열어젖히며 그간 들리지 않던 소리와 숨겨진 감각을 되살리는 시적 매개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멀리 보는 연습"(「티피 같은 태도 속에서 상연되는 그의 시적 시퀀스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감각되는 세계의매혹적인 리듬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 P-1
이수명
언어에도 순도라는 것이 있을까. 언어는 다소 탁하고 무감각한 기호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무표정하고 산란한 언어에서순수한 소리를 벼려내는 것이 구윤재의 시다. 순수한 소리라는 표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시는 소리에 의미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의미와의 접착 면이 노정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노미‘ ‘모루‘ ‘노루‘ ‘흰‘ ‘티피‘와 같은 말들을 발음하면 마치 언어가 최초에 존재했던 순수 상태를 획득하고야 만 듯한 기쁨에 도달한다. 언어의 기쁨이다. 이 순도 높은 언어는 "다락의 노미"(「다락의 노미)나 아이들이 서로 던지는 "흰"(「겨울은 양쪽에서 온다」), "티피의 공간" (「티피」 등 입체적 이미지 안에서 움직이며 생명을얻는다. - P-1
섬기는 이가 있는 삶은 보람차고사무치고 사납다 - P-1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욕한다는데! - P-1
대한민국에 사는 희망은 키가 작다. 발이 작다. 손이 작다. 그래도 성인용 속옷을 입는다. 어느 날 희망은 자신의몸이 커졌다 생각했다. 희망이 발을 쿵 구르자 현관 계단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에, 희망은 드디어 내가 소인국에 왔군 올 곳에 오고야 말았어 흥분했다. 허물을 벗은 후더 아름다운 뱀 더 커다란 뱀 태어나므로 희망은 두 발을쾅쾅 구르며 계단을 완전히 부수고 허물을 부숴버리기시작했다. - P-1
원은 굴러가고 싶다. 점 하나가 몸에 박혀 있어 쉽지 않다. - P-1
원은 사회를 원한다. 리드미컬한 사회를 - P-1
엉망은 얼굴을 편안하게 한다. 점들이 부풀었다 작아졌다 제멋대로다. - P-1
기차는 자꾸 늦는다. 시즈! 이미 늦은 것도 또다시 늦는다. - P-1
하얗고 부드러운 건물의 영혼이 건물 앞에서 담배 한대 피우고 있는 것이다. - P-1
강아, 이제 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몸을 일으켜. 다른 길로 오면 돼. 다르게 보이는 길로 오면 돼. - P-1
호수를 되돌아 나온다. 빛이 이쪽으로 무너지고 있다. - P-1
너에게 수상함이 없었다면너를 좋아하기 힘들었을 거야 - P-1
우리의 주된 목적은 마음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빈구멍의 구조적 완전성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 P-1
*그녀는 다섯 개의 무덤을 팠다자신이어디에 묻혔는지모르기 위해서무덤에서는낙하산이 발견되었다 - P-1
딱따구리를 데리고 있다. 이것은 내 약점이다. 딱따구리는어디든 구멍을 낼 수 있으니까. 사람의 머리통에도. - P-1
익숙한 냄새다 그러나 그리운 냄새야 고작해야 나의냄새일 텐데도 내 콧속에서 나는 냄새 같은 건데도 - P-1
그의 다리는 가느다랗지 않아서핀을 꽂아 표본으로 만들 수 없고인간을 표본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었다. - P-1
미루기와 벼락치기는 내 인생을 이루는 유구한 형식이다.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는 강박적으로 계획을 세우고는 한다. 그건 계획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알고리즘과 같아서, 세세한 단계와 실행 절차, 예상 소요 시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사항을종이에 적어놓으면 안심이 된다. 때로는 들뜨기까지 한다. 이대로만 하면 완벽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난 것이 될지도? 안심이 되니까...... 일단 잔다. 그리하여 계획은 하나도 이행되지 않는다. - P-1
잘 봐, 다 너를 위한 거란다. 할머니가 내 등을 떠밀었다나는 응어리가 되어 높낮이 없는 음이 되어 구른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 - P-1
모든 아이는 죄와 함께 태어난다고 했다 - P-1
주먹을 펼치면 빛은 깨진 미래모루와 노루는 그런 것까지도 다알았다 알면서도 그랬다구윤재, 「모루와 노루」 - P-1
원은 사회를 원한다. 리드미컬한 사회를. 김선오, 「영원과 에러 - P-1
딱따구리는 내 머리 옆쪽에 구멍을뚫어주었다. 그건 정말이지환상적인 사고였다. 신이인, 「새」 - P-1
당신 자식이 당신에게 했던모든 말을 모아 만들어진 몸이나라고 생각해요이실비, 「칠] - P-1
작은 손 작은 발의 소인들더 작아져도 되는 곳, 희망에게김복희, 「새 입장」 - P-1
새벽 4시인데 왜 연필을 깎겠습니까그런 힘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걸문보영, 「그런 힘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걸」 - P-1
몬스터볼 안에 구겨 넣고 싶던무한히 가능하다는 공포괴물 같은 그거유선혜, 「가챠 갸루 - P-1
나쁜 것들을 잊기 위해꿈속에서 모은 사연들로 밥을지어 먹었다한여진, 「사운드트랙」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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