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회10여 년간 TV 코미디 작가로 일했고, 이후 10여 년간 에세이스트로 살고 있다.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나의 누수 일지』 『꾸준한 행복」, 장편소설 『친애하는 나의 술』 등을 썼다. 여름이 올 때마다 이 책의 중쇄를들고 휴가 가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다. L
오랫동안 나의 여름어(語)는 ‘기대‘였다. 늘 여름을기다렸고, 계절에 벌어질 일들을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여름이 되면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어버버댔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날씨는 서늘해져 있고, 먼 산을 보며 별 볼 일이라곤 없던 지난 계절을 한탄하는 식이었다.
"숙소까지 데려다줄게." "뭘로?" "오토바이로."
모든 과거는 추억이 된다지만 모든 추억이 그리움이 되는 건 아니다. 이제는 여름이 와도 그때의내가 그립지 않다. 더는 그런 걸 원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만큼 여름에 실수를 덜 하게 됐고, 이제는 이런 여름이 좋다.
옥수수를 좋아한다. 특히 제주 초당옥수수에 열광한다. 내가 제주도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갓 딴 초당옥수수를 먹을 수 있어서다. 만약 제주도에 사시사철 초당옥수수가 난다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내려가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간에도 휴가가 필요하니까. 내 간은 휴가를 겨울에 간다.
4. 수영하기 전에 샤워하고, 수영한 다음 또샤워를 해야 하다니, 왜죠(어차피 물에 젖을몸을 물로 씻고 말린 다음, 그 몸을 물에 실컷적시고, 이미 젖은 몸을 물에 씻은 다음 다시말리는 절차의 비합리성이 이해가지 않는다)?
특별한 날에는 백화점 과일 코너에 간다--샤인머스캣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호캉스는 호사스러운바캉스가 아니라 호텔에서 하는 바캉스라는 것을. 어쩐지 안 호사스럽더라. 아니, 따지고 보면 호텔에서 하는 바캉스도 아니었잖아.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정한 호캉스를 경험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여름에 한 번 더 해볼까. 호텔에 처박혀서 수영장에도가고, 룸서비스도 시켜 먹고, 피트니스 클럽도 이용하는 진짜 호캉스를 계획해볼까?
"지상낙원이라는 괌에 와서 우리는 지옥을 맛보고 있죠!"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아무튼, 여름에 나온 냉면집이라며 올라온 글을 보았다. 하지만 그 집이아니었다. 내가 매년 여름이 오면 찾는 곳은 ‘옥천냉면 황해식당 본점‘이다.
여름휴가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건 나머지세 계절을 버텨온 스스로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모르고 살아온 부모님이 계시니 올해는 여름휴가를 함께 다녀올까. 그러려면 일단 돈을 벌어야겠지. 나 어렸을 때 부모님이 그랬던것처럼 이번엔 내가 최선을 다해야겠지….
여름은 담대하고, 뜨겁고, 즉흥적이고, 빠르고, 그러면서도 느긋하고너그럽게 나를 지켜봐준다. 그래서 좋다. 마냥 아이 같다가도결국은 어른스러운 계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여름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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