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레몬 마트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을 때 레몬색 바지를 입고 무심히 나간 줄 알겠지만 기막힌 수식이 담겨 있어 냉정한 뭔가가 태도를 달라지게 했다 꽃과 칼가령 레몬 관계 같은 것 스커트 속으로 손을 집어넣던 인물이 있었지 불가사리의 빨판이네 몇 번이나 떼어내도 떨어지지 않았어 레몬이 미지근하게 물러지고 있었다. 이게 스커트를 사절한 이유이기도 해 우리는 모두 이렇게 치사하게 낡아가는데
시는 유머와 농담으로 가득한 유서 김소연(시인)
계단은 끝없이 쏟아지고저렇게 경쾌한 노래는 남의 것 같지 않은가토마토가 계단을 만들던 일절망이 명랑하게 굴러가는 일내 생의 문장이 이토록 힘을 받아 굴러간 적 있을까왜 나는 여기 있지? 주워도 끝나지 않는 일이 왜 나의 일이지? 고민하는 동안방울토마토는 두려움을 모르고 구르고 있네털썩 계단에 주저앉을 때방울과 방울들이 목금소리를 들려주네방울토마토 따라굴러가는 월요일 말랑말랑해지는 월요일토마토는 힘이 없는데 힘이 있지속도가 근심을 다 지워버려서
방울토마토가 쏟아졌다아침이 계단으로 사정없이 굴러가는데달아나는 토마토를멈추어야 하는데더욱더 멀리 아득하게내려가고만 있네고 작고 말랑한 것이 손쓸 수 없도록더 내려갈 수 없을 때올라갈 수 없는 위가 생겼는데당신들이 대체로 뻔하고 진부해질 때
도시락이 사라지면 어때 월요일을 모르면 또 어때깨어난다면 그것이 꿈인 날들 속에서시가 더여전히 계단은 굴러가고 있는데-「월요일의 도시락
미안하다세간의 내용들필요 없는 걸 설명하느라 늦었네너를 위하려다 너를 돌아서게 하였네-「온도」 부분
저토록 넘치는 것은 부재와 무엇이 다른가사과 트럭 부분비명은 삼키는 것이 아니라 아작 씹어 뱉는 것인데―「미니멀리즘」 부분창가는 이유가 놓이는 곳이라는 거약속은 말씀에 물을 주는 거지요-「제라늄」 부분생은 애써 잘하지 않기를 가르친다「카디건」 부분기념은 사라짐으로 기념이 된다는데-「기념일」 부분기도는 자주 흩어지려 하니두 손이 필요했겠다-「면적」 부분
기껏 잘하려 할 때 실수를 하지 맘껏 실수하자유서를 쓰려고 해 간결한 유서웃음을 잃은 사람으로 살았으니유서는 유머와 농담이 좋을 거야
그때, 어쩌면 마지막 통증인 듯 나무가 몸을 떨었고이마에 작은 등불을 건 벌들이 하염없이 주변을 날고있었다얼핏 오래전 한 사람의 자리처럼「본래면목」 부분
이규리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당신은 첫눈입니까』가 있고, 시적 순간을 담은 산문집으로「시의 인기척』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사랑의 다른이름』이 있다.
경로돌아가고 있는 선풍기에 막대기를 넣어본 적 있다P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와 유사한 문장이 나왔다신선해얇은 겹을 일흔 번 두르고 페이스트리 빵이 나오지경로라 하지 그 빵은몽블랑이란 이름을 달고 몽블랑처럼 당당하지포크로 누르면 금세 납작해져서다음 경로를 가지겠지만몽골의 톨강에서 배가 뒤집혀 죽음처럼 떠내려가고 있을 때, 왜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는 거라 생각했을까챙! 부서지던 순간. 다른 경로가 나왔지눈부신 경로였지나는 죽은 후에도 나를 보고 있을 거야卡卡
시인의 말나의 모든 슬픔은 의지였다. 미안하지 않다. 2025년 6월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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