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
누가 심었는지 모를 동구 언덕 느티나무가 한 백년 살아서 집터만 한 그늘을 깔고 앉아서 지나는 바람마다 불러들여 해주는 이야기에는 살아온 내력의 울음 섞인 이야기가제일로 많긴 하지만 이삼월 건너 사오월로 넘어갈 적의 연두 초록 혀끝에마저 울음을 얹긴 싫어서 삼월 마지막 날이사월 첫날을 맞아들이는 듯한 순전한 눈웃음끼리의 마주봄, 그것 젖히고 피어나는 입술의 맞닿음 속 허밍, 손톱 빛깔의 하늘 이야기를 루루루 루루루 해대는 것이다
시월에는 바다를 향해 말합니다가던 길 멈추고 돌아서서 말합니다찬란한 반짝임 모두 모아 붙들고 말합니다
쌀농사가 아닌 노래 농사라니요 매년 풍년의 노래 농사라니요
창을 닦아요 창이 없도록 창이 없도록 투명까지도 없도록 닦아요 부술 수 없으니 창을 닦아요
잃어버린 열쇠를 끝내 찾지 못하고치매의 아름다움 속을 순례한다열쇠 구멍에 입김을 불어 넣는다열쇠 구멍 속에 장미꽃 가지를 넣어 돌린다(꽃은 손안에 그득히 쥐고는!)
온몸으로 부르면내 말문을 가져가모든 잎이 초록 입인 나무모든 잎이 초록 귀인 나무서 있는 나무외로 서 있는 나무외로 서 있는 나무
나는 법이에요양심 같은 건 우습죠 이득 앞에서그깟것 금방들 버려요 시류에 어긋난 소리죠아 이만하기도 참 다행이죠한때는 참 어려운 시절도 있었죠너무 많은 살생을 해야 했으니황혼이 오네요저게 제일 싫어요속속들이 황혼이 오네요저 지축 속에 숨은 당당한 발소리나는 귀를 막아요잘 못 듣는 귀지만 다시 막지요
그대에게 올라가는 사닥다리가너무 길었구나허공에 房을 들이고 앉았다가진눈깨비처럼 쏟아진다
장석남의 시는 두어걸음 떨어져 읽으면 ‘훤‘하고 ‘환‘하여 양1기로 충만한 꽃나무 같다. 그 잘생김에 마음이 끌려 안쪽으로들어가면 이번엔 온통 서쪽이다. 무엇이든 기울어지는 곳, 노을빛이 전부인 곳, 캄캄한 그림자가 "모란의 몰락"을 지켜보는곳 안팎의 다름이 흑백의 대비처럼 절묘하여 읽는 사람은 ‘저쪽‘이 되었다가 이윽고 이쪽‘이 된다. 어느 곳으로든 흐를 수있다. "물에 노래를 심다니요". 그의 시는 과연 물 위에 심은 노래처럼 떠다니고 맴돌다 고요히 증발한다. 시 속의 돌, 꽃, 춤, 선)을 따라가다보면 "언덕을 넘어오는 한 사람이 보인다. 오래된 얼굴이나 아직 부끄러움이 떠나지 않은 얼굴이다. 훤하고 환하며 안쪽은 슬픔으로 서쪽인 얼굴이다. "나를 향해 내가 모르는 죄가 다가오듯이"뱀처럼 어둑하게 아름다운 이리듬을 보라! 배를 밀며 오는 음악에 종일 귀 열고 싶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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