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는 잘 묶여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건물처럼 고요하게
건물이 허물어지고다시 지어지길 반복하면서몇년째 공사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이 무한한 빌라
파업을 해도 택배는 멈추지 않고 도착했다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아침이면 연어가 도착했다
긴 줄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집을 향해 걸었다 집으로 가지 못한 차들이 도로에 눈을 맞고 서 있고 떨어진 사과 하나는 붉은색을 들고 굴러갔다
스크린도어가 생기고 터널을 노려보던 습관은 사라졌다 어둠과 함께 역무원도 하나둘 사라지고
차라리 돈을 많이 벌지 그랬어그렇게 말해주는 시가 있었다면저작권으로 농담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이케아 가구 조립 설명서의 나사 그림은 실제 크기와 같다 우리는 부품에서 시작해서 정확하게 가구에 다다르게 된다
새벽 배송과 지하철 시간표처럼 믿는다고 나를? 한번도 완성해본 적 없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겨울이 개나리를 터뜨린다 내가 개의 목줄을 밟고 지나간다 그대의 개가 짖는다
검은 비닐이 아니고 누가 계속해서 다리를 건너고 있다 잠옷 위에 패딩을 걸치고
•로고스는 통상 이성과 합리로 번역되나 여기에서는 파토스에 대적하는 자질로서 무감함(insensibility)으로 사용한다. 감정과 정동이 주체와 대상에밀착하여 발생하는 것과 달리, 무감한 로고스는 그것들과 일정한 거리를 항상적으로 유지하며 ‘나‘가 파토스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막아선다. 남현지의 텍스트에서 표층의 언어와 심층의 언어는 모두 로고스로 지어진다. 독자도 평론가도 분명하게 볼 수 없는 파토스는 절대적으로 화자만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화자의 감정이나 심정을 헤아리는 방향이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으나 보여주지 않는 것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숨겨져있는가를 추적하는 방향 속에서 독해된다.
겨울이 개나리를 터뜨린다 내가 개의 목줄을 밟고 지나간다 그대의 개가 짖는다
노인들은낮부터 방에 드러누운 젊음을안타까워하고
모처럼 산에 올라도 사라진 마음이 돌아올 기미가 없다면. 호숫가를 걸어보아도 생각이 꼼짝 않는다면, 당신의 생활은무사히 건강한가? 파업을 해도 택배가 현관 앞에 고분고분놓여 있다면,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식탁 위에 성심한 연어가 올라와 있다면 세계는 평화로운 한잠 중인가? 남현지의 시는 사랑을 하라고, 마음을 지키자고 선량하고아름답게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은 해로워라"(피서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거대한 마음들에 커켜이 짓눌려 있는지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냉가슴 위에 마음의 위력을 되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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