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만큼만 일하고 싶어요

"1인분만 하고 살아."
자라오면서 엄마로부터 매일 듣던 말이다.

"서기야, 니가 노력한 것만 욕심내.
몸보다 마음이 바쁘면 안 돼.
마음은 잠깐 서 있으라고 해."

"얘가 또 시작이네. 엄마가 그랬잖아.
공무원은 10년만 버티면 괜찮다고, 먹고살 만하다고!"

"젊음이 특권이라고? 아니, 젊음은 형벌이야.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견뎌내야 할 게 너무 많아

"실패하고 실패하다가 본선에는 가보지도 못하고마지막 패자부활전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
그게 9급 공무원들이야."

"돈은 뭘 해서라도 벌 수 있는 건데이미 지나간 시간은 다시는 못 벌잖아.
그것도 내가 가장 젊을 때의 찬란한 시간"

그해 기수 성적 1등, 명문대 출신 엘리트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돌아 돌아 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 월급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어, 야물딱진 성격답게 시원하게 사표를 던지고 원래 전공이던 교육학을 살려 학원을 차린다. 뭘 해도 공무원보다는 더 버는 세상인데, 왜 내 빛나는 시간을 고리타분한 조직에서 낭비해야 해? 너무 아까워!

서기의 동료 중 유일한 남자 공무원, 나이도 어리고 뭐든지 빠릿빠릿하게 해낼 수 있지만, 월급이 사람 대우를 안 해준다. 2년 차까지는 그럭저럭 참았는데, 서기 누나, 나도더이상 못 참겠어. 일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고 내가 받는 만큼만 일할 거야. 그 이상은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받는 만큼만 일하는 게 뭐가 문제야?

"정답은 조직 안에도 조직 밖에도 없어요.
각자 마음의 중심, 거기에 있는 거지."

"왜 싫어하냐고? 사람 싫어하는 데 이유 있니?
그냥 싫을 수도 있는 거잖아!
니가 그냥 일을 못하는 것처럼! 그냥!"

조직 내 정치질에 능숙한 능구렁이 고인물. 정치질로 인사팀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나처럼 MZ 세대들 이해 잘하고, 공감 잘하는 팀장이 어딨어? 나 같은 상사 만난 걸 행훈으로 알아야지! 하, 참나. 근데 이서기 주무관, 책을 썼다고? 돈이 되긴 해? 돈도 안되는 걸 뭐 하러 한다고 쯧, 야설, 뭐 그런 건 아니지?

30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했다. 도배학원에 다니며 32살 시집 안 간 딸뒤치다꺼리를 하고, 90세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시는 가장이다. 요즘 나이 62살이면 청년인데, 후배들은 내게 박수칠 때 떠나라고 한다. 나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시켜만 주면열심히 할 수 있는데, 그럼 남은 우리 딸이랑 아버지는 어떡하지?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느꼈으면 그걸 보전하기 위한노력을 해야죠.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읽고, 조금 더일찍 와서 조금 더 늦게 가고 일을 처음부터 효율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아요. 삽질부터 시작해요. (종이와 펜을 꺼내서 업무에 관련된 표를 그린다)

아, 그럼, 누그러진다) 내 아들은 대학 안 보내고 바로 공무원학원 보냈어. 정보라처럼 연고대 나와도다 결국 돌아 돌아서 공무원 들어오는데 대학이 다무슨 소용 있어. 차라리 공무원 빨리 될수록 좋아.

일 년에 3만 원 올라도 그게 어디야, 땅 파면 1원이라도 나와? 20대에 얼른얼른 시험 보고 들어가서,
30대쯤 공무원이랑 결혼하고, 40대쯤내집 장만해서 애 낳고 늙어서, 노후자금 부족하다 싶으면 주택연금 들어서 집 뜯어먹고 살면 되지.

내가 계약직 강사 시절에 들었던 ‘개나 소‘라는 명칭을 9급 공무원이 되어서도 듣고 있다. 개나 소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이곳에 들어왔는데, 언제쯤 난 사람으로 회생할 수 있을지?

윗 세대들이 자꾸 MZ MZ 거리는 것에 대해피로감을 느낍니다.

내가 매일 출근하는 1인 감옥.

"조용한 사직 중입니다만."

비겁하게 아무도 모르게 혼자 사직하고 내가 만든 작은 알에서살고 있었는데, 이젠 그 안락함을 깨보라고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 자신이

사십오 살이 정년, 오십육 살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

말과 행동이 다른 것도 우리 아빠와 똑같다. 과장님이란 옷을벗은 맨몸의 과장님은 나의 아버지와 똑 닮았다.

30살 막내딸의 62살 아버지의 90살 아버지 은퇴하신 과장님은 아직도 위아래로 부양할 가족을 주렁주렁 달고 계신다.

-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은 강하다.

사실은 너무 잘 알았던 거야. 재능이 있는 줄 알고시작했는데 그게 너무 애매한 재능이었다는 거. 성과는 없고, 그럴수록 확신은 바닥나고, 나이는 먹어가고, 다들 결혼해서 집 사고 애 낳고 그렇게 저렇게 사는데, 나만 혼자 궤도에서 벗어난 것 같았어.

딸, 힘들면 그만해도 돼. 엄마는 우리 딸 믿어. 사랑한다.
- 엄마가-

공무원, 길이 정해져 있는 인생. 같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가공되는 공정. 편안하고 안락하고 실패가 없는 길이지만 절대 성공도 없어야 하는 하향 평준화의 세상.

"돈은 벌어도 시간은 못 벌어"

뭐, 그래. 공무원이 진짜 생계유지하기엔 진짜 딱 좋은 직장이지, 공무원 급여체계가 진짜 노예근성 기르기에 딱 맞도록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잖아. 이거처음 설계한 사람 진짜 최소 사이코패스야.

원래 시키지 않는 일까지 다 해도 잘리는 게 세상이야. 나 이만큼 했어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내가 다 할게요. 절절맬수록 궁지에 몰리고, 애원하고매달려도 밀 때 되면 밀어버리는 게 세상이라고. 넌뭔 짓을 해도 안 잘리잖아.

그게 싫다고! 나도 안 잘리고, 쟤도 안 잘리고, 다 안잘리고 이대로 고여서 사는 게 싫다고!

하, 난 몰랐어. 세상에서 나만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안 힘든 사람 없지, 티를 안 낼 뿐.

사람 아니면 뭔데?
소모품이지.
슬프다. 그저 도구인가.

1 서기보 : 9급 / 서기: 8급 / 주사보: 7급 / 주사: 6급 / 사무관: 5급 / 서기관4급

엄마는 너한테 할 만큼 했잖아.
어…?
너 재수하고, 삼수하고, 서른 먹도록 만 원 이만 원받아가면서 책가방 딸랑딸랑 메고 도서관 왔다갔다할 때도, 엄마는 너 하고 싶은 거 못 하게 한 적 없잖아. 엄마는 너한테 할 만큼 했잖아.
엄마, 왜 그래.
그래서 번듯하게 공무원도 되고, 사위도 든든하게직장 잘 다니고, 너네 살 집도 주고, 탈 차도 사주고, 엄마는 너한테 다 줬어, 다….

. 엄마는 항상 "내 할 도리만 한다"

엄마는 왜 평생 그렇게만 살아! 왜 엄마 인생은 없어?
니들만 잘 살아 주면 엄마는 후회 없어.

정답은 안에도 밖에도 없어

그렇다고 주무관님이 유능하다는 건 아니야. 못하긴 해. 어떻게 시험 봐서 들어왔는지 모르겠는 정도야. 근데 내가 잘하라고 한 적 없잖아요. 못하지만말라고, 도와주겠다고. 근데 안 하는 거죠? 안 했잖아요. 못한 게 아니라. 이 자리 올라오면 다 알 수 있어. 다 보여. 모를 것 같아요?

해야 되니까요. 다들 딸린 식구 주렁주렁 많고 책임져야 할 게 많으니까. 좀 쑤시고 지루하고 하기 싫어도 좋은 척 상냥한 척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는거예요. 먹고사는 문제가 장난 같아 보여요?

"모두를 위한 선택"
나의 퇴사가 모두를 위한 선택이라니.
그 모두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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