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한일합방, 1950년 6·25, 1997년 IMF

유교는 처음부터 거짓을 안고 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모르고 있지만 유교의 씨앗은 쿠데타로 왕권을 쟁탈한 조갑이라는 한 중국인 사내의 정치적 탐욕을 감추려는 목적아래 뿌려진 것이었다. 기원전 1300년경 황허 유역에서

이제 지도는 찢어졌다


한복과 김치의 뿌리와 현주소, 그리고 그것이 왜 도태당하고 있는가에 대한자기 해체적 반성과 분석이 없는 한, 모든 시도는 한여름 밤의 부채 역할밖에하지 못할 것이다. 가을이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부채는 너덜너덜해진 채내던져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것‘에 대해 냉정해질 때가 되었다.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노자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했다.

못났으면 빨리 고치고, 좋으면 나가서 알리자.

술 한 잔이 망친 나라


한국인들이 회식을 즐기는 이유는 공돈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 공돈이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함께 먹자‘는 공범 심리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각자 번 만큼 돈을 받고 돈을 쓰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공짜 심리가 어느 조직에나 깔려 있는 것이다.

법치가 되지 않는 이유


어느 나라나 법은 다 있다. 조선시대에도 위대한 법전 《경국대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법은 엿이었다. 늘이면 늘어났고 자르면 잘라졌다. 엿장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법은 있었지만 ‘rule‘이 없었던 거다. 어느 누구도 법을 똑같이 적용받는 규칙, 그 규칙이 조선에는 없었고 한국사회에도 없는 것이다.

첫째, 법치가 되지 않는다. 둘째, 늘 과거에 묻혀 산다.
셋째, 주검을 숭배한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화적 폐쇄성에 있었다. 그것이 우월의식에서 비롯되었건 자격지심에서 비롯되었건 간에, 결과적으로 우리들 삶을 망가뜨리고, 새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만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뀐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들의 10대는 문화적 고아들이다.

20대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세대들이다.

30대는 1회용 반창고다.

지금의 40대는 이미 용도 폐기를 언도받았다.

그 옆에는 엉거주춤한 50대가 있다.

인간이란 따지고 보면 참 웃기는 존재들이다.

영남은 영남대로 ‘챠라! ‘만을 내뱉지 말라. 호남은 호남대로 너무 ‘거시기하게‘ 뭉치지 말라.

유교의 이상 사회는 픽션이다. 허구다.

우리 문화 속에 남아 있는 정치의 횡포, 그 횡포는 바로
‘민심은 천심‘이라는 논리를 통해 면죄부가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억지들이다. ‘민심은 천심‘의 논리 속에 숨은선거의 교묘하고 더러운 과정을 떠올려보자. 민심을 통해 확인된 천심을 부여받은 ‘정치인‘이 다소 ‘법‘을 조금뛰어넘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그래서 용서되어야 하는것일까? 그리고 그 정치 앞에 고개 숙이는 학자들의 허연머리 조아리기는 그래서 눈감아져야 하는 것일까?

주자학, 그 위대한 사기극


나는 우리 사회 병폐의 원인을 유교에서 찾았고, 그중에서도 주자학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그의 여러 담론과 책들을 읽어보았다. 잘못된 출발, 정적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비열한 싸움, 당쟁으로 불리는 싸움의 시작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파국의 그림자가 지금껏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인간의 비전이란 칠판과 같죠. 한번 줄이 그어지면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저는 유사한 것을 미리 보지않습니다."

한국인의 뇌리에 각인된 ‘온고지신‘의 ‘뒤돌아보기 문화‘는 미래를 지향하는우리들의 발목을 수시로 붙잡는다. 뭣 좀 해보려는 젊은이들의 발목을 꽉꽉틀어잡는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곳에 있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등 조직을 들여다보면 외형은좀 달라 보이지만 의사결정 구조나 정책 입안 등에서 거의 동일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기업 총수의 개인적 희망이나취미로 인해 결정되는 사업 아이템, 전문가의 분석을 재해석할 수 있는 정치적 결단(?), 연구소의 연구원이 능력보다는 여전히 ‘친구의 아들‘로 채워지는현실, 연구비의 책정이 동문이나 스승, 제자의 학연 등에 영향을 받는 현실을 여전히 목도할 수 있다.

도덕의 깃발(새로운 정치 세력의 초기) → 과거 청산을 위한 초법적 힘→ 룰(rule)의 파괴→ 전문가 집단의 위치 박탈→ 객관적 경보 장치의 무력화→ 사회 각 계층의 전문시스템 부식 시작→ 외부 충격 또는 내부적 혼란으로 인한 붕괴→ 수습을 위한 새로운 도덕의 깃발

이들에게 나라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속한지역을 기반으로 한 집단의 이익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노동력을 잃은 노인들의 노후문제는 진작부터 사회가맡았어야 할 숙제였다. 서구의 양로원을 비웃으며 효도의가치를 자랑스러워하던 우리 사회의 노인들. 이제 그들의처지는 한여름 노래를 부르던 베짱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문제를 숨기면 숨길수록 희생자는 점점 많아져간다.

넓게 볼 때 인간은 똑같다.

남을 미워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더구나그가 이웃인 경우에는

역사는 기억해야겠지만 아픈 상처는 이제 그만 잊을때가 되었다. 잊지 못한다면 용서할 때는 되었다. 그리고솔직해질 때가 되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도 일본을 미워하라고 말해줄 용기(?)가 없다. 나는 아이에게 일본 친구를 많이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고베에서 만났던 제 엄마친구의 딸인 눈이 댕그란 동갑내기 계집애 마이짱 같은친구를 말이다. 순수한 내 아이의 가슴에서 어떠한 미움의 씨앗도 자라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어린아이들이 숨어 있습니다.(Thereis little child in all of us.)"

유교의 가치관 중, 공자가 한 말로 이런 것이 있다. "괴이하고, 억지 쓰는 것.
상황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말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정상적이고, 순하고, 단순하고, 인간적인 것만 말하라는 뜻이다.
물론 이 상황들은 사회를 지탱해가는 가치관적인 측면에서 다시 다루어져야겠지만 이로 인해 600년(조선 500+근현대) 이상 억압된 상상력은 21세기가 다가오는 오늘날에도 터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창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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