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에서 풍전엿공장으로 고정된 직장을 잡게 된 것이 한 걸음 나아간 발전이었고, 엿공장에서 쌀가게로 직장을 옮긴 것이 또 한 걸음의 발전이었다. 엿공장에 취직이 됐을 때에도 기뻤지만 쌀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다. 전차5전을 아끼느라 구두에 징을 박아 신고 출퇴근을 하면서도 신이 났고, 생활이 조금나아져 5전짜리 음식 대신 10전짜리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을 때의 흐뭇함도 나는아직 기억한다.

무일푼으로 고향을 뛰쳐나온 내가 당대에 어떻게 이렇게 큰 사업을 이룰 수가있었나 미심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짚어둘 것은 나는 우리나라 제일의 부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 사회에서, 세계 경제 사회에서 가장 높은 공신력을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돈을 모아서 돈만으로 이만큼 기업을 이루려 했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나는 ‘현대‘를 통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냈다. 경부고속도로가 그러했고 부산항을 비롯한 항만들이 그러했고 발전소들이 그러했으며 오늘날 우리나라 전력의 50%를 공급하면서도 사고 없이 높은 가동률을 내는 원자력 발전소도
‘현대건설‘의 업적이다. 만약 우리 ‘현대‘가 그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경제는최소한 10년에서 20년은 뒤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산농장은 내게 농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은 내가 마음으로, 혼魂으로 아버님을 만나는 나 혼자만의 성지 같은 곳이다.

남의 눈에 잎이 되고
남의 눈에 꽃이 되어
육지같이 받들어
육근이 청정하고
수명장수바런하고
걸음마다 열매 맺고
말끝마다 향기 나고
천인이만인이
우러러보게 해주옵소서."

언제나, 무슨 일에나 최선의 노력을 쏟아부으면 성공 못 할 일이없다는 교훈을 내가 빈대한테서 배웠다고 하면, 과장한다고 생각할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인천에서 막노동을 할 때 잠을 잤던 노동자 합숙소는 밤이면 들끓는 빈대로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몇 사람이 빈대를 피하는 방법을 연구해서 밥상 위로 올라가 잤는데, 빈대는 밥상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와 사람을 물었다. 우리는 다시 머리를 짜내어 밥상 네 다리에 물을 담은 양재기를 하나씩고여놓고 잤다. 그런데 편안한 잠은 하루가 이틀에서 끝나고 빈대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혔다. 상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다가는 몽땅 양재기 물에 빠져 죽었어야 하는 빈대들이었다. 그런 빈대들이 도대체무슨 방법으로 살아서 우리를 다시 뜯어먹나 불을 켜고 살펴보다가우리는 다 같이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밥상 다리를 타고 올라가는게 불가능해진 빈대들이 벽을 타고 까맣게 천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천장에서 사람 몸을 향해 툭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돈암동의 해방 시대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다. 나보다 어린 사람, 지위가 나보다 아래인 사람이라 해도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욕을 받으면서 시작한 소양강댐

"해보기나 했어?"

올림픽 유치는 박대통령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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