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본래 국가도 없고 국경도 없다.

국경을 그어 놓은들말들은 수시로 국경을 넘는다.

말들은 결코 균질하지 않다.

마지막 질문, 지방의 여성들은 왜 남성들보다 표준어를 더 빨리 익히고 더 잘 구사하는 것일까? 언어 능력이 남성들보다 뛰어나서 반대로 지방의 남성들은 왜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표준어 사용에 질색을 하고 비표준형인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일까?

고무 다라이라는 말은 부끄러운 말도, 오염된 말도 아니다.
좀 못나고 세련되지 못했지만 고무 다라이는 우리의 일상과함께하는 말의 요정일 뿐이다. 우리의 진짜 삶 속에는 이런 요

우리는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당신의 혐오가
당신을 찾아온다

‘에라‘ ‘멘붕‘ ‘뭐 빼면 시체이다‘

이제 승리에 취한 이들은
열 꼬마 인디언 노래처럼
이 광장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하나씩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홉이 남고, 여덟이 남고…둘이 남고, 하나가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광장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안산 선수가 소위 ‘페미‘ 이니 메달을 반납해야 한다는 발언의 논리는 수용 가능한 상식이 된다. 비상식적인 온라인 학대 행위는 이렇게 정상성의 지위를 얻는다.

이렇게 분노 산업의 언어는 실재를 왜곡시킨다.

초가지붕을 정(井)자 모양으로 이는 데 쓰는, 짚을 꼬아 만든줄이라는 뜻의 제주어.

속솜허라. 속솜허라. 속솜허라. 제주 사람들이 국가로부터강요당한 말, 서로에게 강제했던 말.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주문하며 내면화한 그말. 그 말을 들으며 일기를 쓴 소년 양신하는 그 일기 안에서도 스스로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을 강요했을지 모른다.

움베르토 에코는 명명이란, 모든 상이한 개체들을 상이한시점에서 동일한 유형의 사례로 확신시키는 사회적 행위라고설명한다. 이 설명은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가 들판에서 볼수있는 날짐승들을 ‘새‘라고 부르는 원리를 풀어 말한 것이다.

나는 X세대가 아니었다. 지금에야 깨닫는다. 사회가 나를그렇게 호명했지만 그건 나의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을. 마찬가지다.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면, 일단 의심하시라.
그게 진짜 당신의 이름인지를.

노무현 대통령은 이처럼 표준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통속어라는 코드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노리는 의사소통적 효과를얻고자 했다. 그러나 비표준 변이형을 이용한 이러한 의사소통 전략은 ‘말실수‘라는 프레임으로만 재단된다. (교실에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사투리를 사용한 교사의 발화는 실수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상기해 보자.)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은시험이 평가 대상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보여 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지도가 실재를그대로 반영한다는 믿음이길 찾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처럼시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은현실에서 우리의 방향감각을마비시킨다.

: 한국어 교실에서는한국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교사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문장은 흔히 그 사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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