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은 우리 삶의 최고의 강장제이자 치료제입니다. 아무리 단출한 밥상일지라도 정성을 다한 음식에는 격려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외식 문화의 발달로 손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세상에서도,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화로 크게 변화된 일상에서도 집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 사랑하는 이를 위해 차린 밥상이 훗날 그들이 앓게 될지 모를 정신적 허기를 달랠 힘이 되리란 걸 믿습니다.

배고픈 아이는 악을 써 가며 젖을 찾는다.
반대로 배가 부르면 단호히 거절할 줄을 안다.
사람은 굳이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먹는 양을조절할 줄 아는 존재다.

삶을 이어 간다는 건냉장고 속 맛국물이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닐까.
다 먹으면 다시 국물을 우려내야 하므로
‘다시‘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배고팠던 날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단순히 배 속 허기를 느낀 날뿐 아니라 삶이 그저 고달팠던 날도요.
그런데 웬일인지 배고픔의 기억은 행복의 추억과 아련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배고픔 뒤에는 늘 좋은 것‘이 뒤따르곤 했습니다.
배고픔은 단순한 결핍이 아닌 채움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허기짐 끝에 마주했던 소박한, 그러나 특별한 음식에 대한 기억을 담았습니다.
그날의 맛을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음미합니다.

음악이나 요리는 어쩜 이리도 닮은 꼴일까,
화성을 잘 살린 연주곡이 사람의 가슴에 가닿듯,
사랑하는 이의 식성과 입맛에 맞게 조리된음식 한 그릇은 맛 이상의 것을 안겨 준다.

때로는 변주도 필요하다.
낯선 재료는 친숙하게, 거친 재료는 부드럽게,
이렇게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가도록 돕는다.

삶에 허기진 당신을 작은 밥상으로 초대합니다.
이 소박한 밥상이 오늘도 만만찮은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당신에게용기와 위로가 되어 주길 바랍니다.

특별한 찬을 만들 요량이 서질 않고,
반찬의 가짓수를 늘릴 기운조차 없을 때는그저 냄비에 정성 들여 밥을 짓는다.
냄비밥은 그 자체로 정성 음식이다.
밥이 다 지어지도록 관심을 거둘 수가 없다.

청국장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향기가 난다.

햇빛 쨍쨍 여름 오후와 온몸 꽁꽁 한겨울,
‘뻥‘ 하고 병뚜껑 열리는 소리와 함께 별안간환한 봄이 열리기를, 상큼한 딸기잼을 맛보며싱그러운 봄기운을 만끽할 수 있게 되기를.

밥 짓기에 자꾸만 빠져듭니다. 집 밖으로 몇 발자국만 나가면먹거리 천국이 펼쳐지는 세상에서 굳이 역주행 중입니다.

요리 솜씨가 특출난 사람이거나 손수 만드는 찬이 화려해서는 아닙니다.
대개는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부족한 듯 소박한 밥상이 좋습니다.

‘집밥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전략 전술이 필요합니다.
집밥에 지원군과 아군은 절대적입니다. 완급 조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 박자 쉬어 가야 할 때는 외식을 합니다.

밖에서 근사한 한 끼를 먹고 돌아오면 당장 밥이 짓고 싶어집니다.
무게의 중심은 역시나 집밥입니다.

자기 일을 세상 귀한 줄 알고,
의연하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며자족하는 자야말로 참된 ‘지기‘일 것이다.
설사 어느 한 사람도 알아주지 않아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작은 수고로 겨우 씨를 뿌리고모종을 심었을 뿐인데, 스스로 싹을 틔우고열매를 맺게 하는 흙의 위력이 새삼스러웠다.
내 삶도 이와 같았으면 했다. 대단한 요행이나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을지라도, 씨 뿌림에 대한작은 보상을 누리는 삶.

홀케이크는 오직 여덟 조각.
고심 끝에 추린,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과케이크를 나누고 싶다.
빈 케이크 판 위로 후회나 쓸쓸함이 아닌사랑의 여운을 남기기 위함이다.

나뭇결을 따라 고루 기름을 입히다 보면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진다.
도마 자체가 가진 고유의 결과 색감,
향기가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공복은 단순한 결핍 상태가 아닌더 좋은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단계다.
채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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