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인 파울 첼란은 "시는 유리병 편지‘와 같다."고 했다.
우리 자신을 가지고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꽃을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 꽃을
두 사람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한 척의 배를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보라, 너의 눈은 더 작은데도세상을 볼 수 있지 않느냐."
체 번의 결혼을 했으며 조울증을 앓았던 시인 존 베리먼은 ‘나의시가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는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시가 필요하다.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나무
슬퍼하지 말라. 네가 잃은 것은 어떤 것이든 다른 형태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느 날인가는그렇게 못하게 되리라는 걸.
삶의 지혜는 파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파도타기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파도를 멈추게 할 수 없다. 관계의 절정은 함께 힘을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는 것보다 본래의 나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치명적이다. 나에게 필요한 일은 꽃봉오리에게 하
다른 사람들의 봉오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축복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다.
"이 세상의 문제는 머리 좋은 사람들의 의심 때문. 이라는 부코스키의 말대로 우리는 너무 영리하기 때문에 ‘원하는 일을 하면안 되는 이유, 할 수 없는 이유‘를 계속 찾아내는지도 모른다. 물론
다만 기억하라, 건너편에서는당신의 풀이 더 푸르러 보인다는 것을.
모든 영혼에 별이 빛나는 바다가 있고모든 마음에 중력에서 해방된 별똥별이 있다.
잔치를 열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 나리라.
운명은 나를 비천하게 사용했다. 그러나 나는 운명을 향해 웃었다.
삶이 노래처럼 흘러갈 때 즐거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소유하고 경험하고 연결되기 위해 태어나지만 생을 마치는 날까지 하나씩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 삶의 역설이다. 잃어버
내가 두 팔을 펼쳐도 하늘은 조금도 날 수 없지만 날 수 있는 작은 새는 나처럼 땅 위를 빨리 달리지 못해.
동시는 아이들을 위해 쓴 시가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아이의 마음으로 노래한 시다. 어른인 체하는 마음에는 보이지
시의 언어란 얼마나 놀라운가? 평범한 단어들이 몇 개 모여 갑자기 특별한 의미로 마음을 파고든다. 이 시의 원제는 북쪽 농장
거울에 보이는 너의 이미지를 벗겨 내라. 앉으라, 그리고 너의 삶을 살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
호수에서 나온 새가 물방울 몇 개 묻혀 나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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