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사가 아니고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의 실력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사람‘이 될수록 탁월한 치유자는 절로 된다. 오랜 현장 치유자의 경험으로 가지게
요즘은 대학뿐 아니라 대학원에서도 심리상담 관련학과의 경쟁률이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학부에서는 다른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상담이란, 내 고통을 누군가에게토해내는 일이란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의 이완과 함께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이를 바닷속에 둔 채로 숨을 쉬고 있
상담이란 건 기본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 자기 고통에 집중하는 과정이에요.
상담이란, 내 고통을 누군가에게 토해내는 일이란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의 이완과 함께 일어나는 일입니다.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트라우마 초기의혼돈 상태에서 나타나는 흔한 증상입니다. 이럴 때는 이
물리적인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거기에 맞게 사람마음도 금방 리셋되지 않아요. 우리가 살다보면 죽을 만
게다가 환자화(化)하는 듯한 전문가에게 거부감을 갖는 것은 오히려 건강한 자아가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저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파악‘ 하고 ‘이해할 수있어야 상황에 대한 자기주도권을 찾을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상황에 대한 자기통제력이 생깁니다. 그때부터
사람이 가장 불안하고 공포스러울 때는 예측 불가능할 때입니다. 혼돈과 불안이 극심해지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차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그 힘으로 결국 수렁에서 걸어나을 수 있도록옆에서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거죠.
세월호 유가족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사회적 · 개인적 트라우마가 무척 많은 곳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한해에 1만 5천명 정도라고 하니 그 가족과 친한 친
다 더 중요하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사람은 모두 똑같지 않다는 당연한 진리예요. 치유의 이론이나 상식보다
아무리 빼어난 이론이라도 이론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에 주목하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그것이 가장 근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굳이
어떤 경우에도 어떤 인간에게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전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이웃에서 밥은 단지 허기를 면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별적인 인간으로 존중받는 느낌을전달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도구입니다.
아웃에서 엄마들이 뜨개질하는 걸 보면 무슨 돌진하는 전차부대 같아요. 뜨개질이 엄마들에게는 앉아서 고통과 사투를 벌이는 일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기계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게기능적인 존재가 아니거든요. 성과나 목표만을 위해 설계된 알파고가 아니거든요.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만 치유자가 아닙니다.
내 생활이 힘들어지면 외면하고 싶고 밝은 쪽만 보고싶고, 그러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당연해요. 공감
건강한 갈등과 모순을 견뎌야 오래 공감하고 함께할수 있습니다. 사회가 지금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나 하나
죽음이 두려운 것은 완벽한 잊힘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 사회의 품격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고통을 대하는태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웃이 겪고 있는 고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한 사람 혹은 공부만 많이 하는사람들은 이론적인 틀을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살이를 분석하고 규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거죠. 진짜 앎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입니다. 말씀
거의 모든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사람 스트레스는 ‘치료‘의 영역이 아닌 ‘치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치유자라고 했던 제 말은 이 영역에서
한 분야를 좁고 깊게 아는 사람을 제대로 아는 사람, 진짜 전문가라고 보는 시각, 이런 이상화가 심해지면 우리 삶, 우리 일상이 대우받지 못합니다. 우리 일상은 비전
삼십여년 전에 의학에 작은 혁명이 있었습니다. 가정의학과라는 전공분야가 새롭게 탄생한 겁니다. 서양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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