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대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라는 문제를제기하는 것이다. 생의 의미라는 피상적 이론을 한꺼풀 벗
시간의 실감 —— 부차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최악의 적(敵)으로서의 ‘시간의 실감‘이다. ‘결국 그는 시간에 소속
고 참된 가치로 느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의식으로서 시작되며, 의식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가치를 가질 수 없으니까.‘까뮈가 더욱더 자기 작품 속에서
과의 대립이다. 부조리는 자기 갈망의 허무를 발견하는 의식의 충격 자체 안에 들어 있는 것이며, 그 충격 자체이기
정신의 최초의 발걸음은 진실한 것과 거짓인 것을 식별하는 데 있다. 그러나 사고가 그 자신에 관해 생각하자마
함에 대한 요구이며 명석(明哲)에의 갈망이다. 인간에게있어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를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시키고 인간의 낙인(格印)을 찍는 것이다. 고양이의 우주는 개미의 우주가 아니다. ‘모든 사상은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라는 자명한 이치에는 다른 의미가 없다. 마찬
시대는 아마 결코 없었을 것이다. "우연(偶然)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고귀(高貴)이다. 어떠한 영원한 의지(意志)도 온갖 사물에 대해서 원하고 있지 않노라고 내가말했을 때, 나는 그것을 모든 사물에게 주었던 것이다"라
었든 간에, 모든 것은 모순, 이율 배반, 번민 혹은 무력이지배하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우주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진정한 유일의 해결책은 인간의 판단에 해결이 없는바로 그곳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것이다. 이 비약은 하나의 도피이다. "시간은 이음매에서벗어났다(The time is out of joint)"고 한 햄릿의 말을 즐
자체는 아니다. 인간의 사유란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향수인 것이다.
모든 기록을 깨뜨린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고 오로지, 가능한 한 자주 세계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알랭은 말한다. "기도라는 것은 밤이 사고 위에 찾아올때다. —— 그러나 정신은 밤을 만나야만 한다." 이렇게
"나의 영역(領域)은 시간이다"라고 괴테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부조리의 말이다. 사실 부조리의 인간이란 무엇인
견한다. 스스로가 일시적이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랑 외에 고귀한 사랑은 없다. 동 쥬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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