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이 소설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시도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있는가?  그은 아마도 "너는어디서 왔니?" 라는 질문에 "나는 이 아니라 일민징 복수의 무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라는대답을 제복에 올려 한 세대의 열정, 사람 죄절 그리고 그 좌절을 한 성장을 공전하고 화인하는 이 아름다운 노 그 자제일지도 모른다. 김회불문학자 · 문화평론가

은희경,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이 소설에서 은희경이 공들여 재현하는것은 바로 우리가 마는 사람이다. 1…) 재현에서부터 시작되는 조망, 무슨무슨 경황에서 빗어나 있으면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조감, 냉소도 위악도 버리고 은희경은 무리 곁에 와 있다. 우리들 안에 서서 우리가 아는 사람의 일상을 맨눈으로 직시하고 있다. 히성란(소설가)

권여선 실버들 천만사


한 사람의 포용 외에 또다른 존재의 각성을 덧붙이는 것으로 모녀 화해 서사의 여사를 새로 쓴다. 더불어 위태로운 삶 때문에 더욱더 고립되는 존재들이 왜 그 고립에서 따져나와 동행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 그리고 진정한 동행의 길에 오르기위해서는 어떤 윤리적 결단과 자세가 필요한지까지 제시한다. 류보선 문학평론가)

집한아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이 소설의 미덕은 무엇보다 ‘이야기하기‘
에 품실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작가의 공력이 곳곳에 스며 있음을 거듭 확인할 수있다. 어폐면 조금은 전형적인 리얼리즘‘ 작품이라고 말합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또 어떤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대목을 읽으면서 마음이 돌연 시큰해지는 것은어쩔 도리가 없다. 윤내(소설가)

최은미 내게 내가 나일 그때 


썼던 것의 절망 위에서, 또 써야 하기에, 다음 절망의 가능성을 향해 기. 그러니 쓰기는 자기보다 멀리까지, 때로 스스로 버티기 힘든 데까지가버리는 일이다. 초기에 다가가기, 쓰기를 지속하기는 자기를 넘어서는 자기의 감함을 비라보는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머릿속이 하애지도록" 내달려야 하는 일인지.
로 보고 있지 않으면서 숨막히는 어지러움과 림료한 격암으로 그것을 겪었던 건 모직『내게 내가 나일 그때를 읽는 동만이었다. 백지은(문학평론가)

기준영 들소 



그리고 어떤 정의보다 그 점의를 넘어서는 작품을 만나는 것이 더 좋은해답 찾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들소를 읽고 이 작가가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했기에 힘복했다. 그리고 좋은데 뭐가 좋은지 정확히 말할 능력이 모자라 그저 어리둥절해하며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아 좋은 작품은 그냥 좋구나, 어떻게 좋은지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좋구나, 하면서, 윤성희(소설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의심을 품는 것은 찬양할 만한 일이다!‘

내가 공부는 못해도 몸 쓰는 일은 좀 하잖아?
- P128

늘 모욕만 당하는 사람이 자존감이 낮으리라고 생각했다가는오산이다.  - P158

위태로운 삶과 동행의 힘

다. 자연스레 이 건물에 들어올 노인들이 떠올랐다. 시간표에 따라 잠이 들고, 잠에서 깨고, 배식을 먹고, 창밖을 보듯 벽을 보며순서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 그것이 훗날 나의 모습이라고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 P199

"엄마도 내가 없으면 편하잖아. (…) 어려서부터 나를 먹이는 것, 입히는 것, 씻기는 것까지 늘 다른 사람 손에 맡겼잖아. 알아? 그때마다 정말 부끄러웠어. 내가 사라졌으면 싶었어."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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