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러나서 밭에 가 보면
꽃치 피고 파란 잎이 팔랑팔랑 하는데,
저도 나를 보고 나도 저를 보고,
얼마나 사랑서럼고 감사한지 몰라요
송문자(칠곡)

여자가 글을 배우면 친정에 편지질해서 시댁을 흉보고고자질한다는 이유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연도있었다. 식당 메뉴나 간판, 면사무소의 고지문, 동네 버스정류장의 이름도 읽지 못했다. 기록된 역사가 없는 시대를-

이다. 간다는 말도 없이, 송별의 밥 한끼도 먹지 않고 그가족들은 안산을 떠났다. 안산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의 빛깔은 취재할 수가 없었다.
한겨레 2018년 4월 16일

한글아 정말 고맙다.
까만 눈으로 69년 만에
눈을 뜨게 해준 한글아
한이 매친 한글 공부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만나
늦게나마 배우게 되였다.
한글아 너무 너무 고맙다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영화 <말모이는 전국의 사투리를 수집해서 그 의미를따지고 표준말을 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는 모습을 이야기의 골격으로 삼고 있는데, 『큰사전』을 만든 선인들의 활동과도 일치한다.

난방보일러를 평평 때고 밥을 원 없이 먹게 된 이후에도 그 기한의 공포는 정치정서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친구들도 나에게 태극기집회에 함께 나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또 감기에 걸려서 못 간다고 말했다. 감기란 참편리한 병이었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나 선배들도 ‘애국단체 들의 태극기집회에 나가서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내 성장기의 가난과억압을 함께 겪은 친구들이었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뭐라고 소리치며 걷고 있었다. 그 친구들은 모두 국민소득 100 달러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종합무역상사 수준의 초창기 재벌회사에 취직했다. 그들은 해외 상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여학생들의 머리채를 잘라서 만든 가발이나 비닐원단, 담양죽제품 같은 토산품을 해외시장에 팔아서 한줌씩의 달러를 국내로 송금했다. 또는 라디오, 토스트 기계, 금고같이생긴 흑백TV나 장롱같이 생긴 전축을 만들다가 반도체나자동차를 만드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에서 정년퇴직한사람들이었다. 가끔씩 연말 술자리에서 만나면 그 친구들은 "우리가 쌓은 것이 무너져간다"며 분개했다. 나는 그들

오이지는 채소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반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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