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츠쯔젠, 김윤진
역, 들녘 출판사)
수업시간에는 하지 못했던 소설 책 이야기를 여기에 쓸 수 있게 되었구나. 선생님도 누군가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해주면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고, 내가
직접 그 책을 사 읽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나도 이 책을 존경하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어. 그 분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르지 않았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싯구처럼 수많은 책들 중 하나로 말이야. 너희들도 내 글로 인해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적어볼까 해.
먼저 제목부터 생소하고 발음하기도 힘이 들지? ‘어얼구나 강’이라니… 크고
넓은 중국 땅 어디에 있는 걸까? 그나마 중국에 있는 강 이름 하면 장강, 황하 2개만 떠올려도 상당한 중국통이라 할 수 있는데 말이야. 선생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가르는
내몽고 지역의 강(아르군 강이라고도 해)으로 나와 있어. 어디쯤인지 지도로 간단히 표시해 볼게.
순록과 함께 살아가는 어원커족의 이야기
내몽고 지역과 러시아 경계에 흐르는 강 주변에 순록(사슴과 비슷할 거라는 짐작만 할 뿐 정확히 모습을 떠올리라고 하면 난감한 동물이지)을 방목하며 사는 어원커족이라는 유목민족이 살고 있어. 물론 21세기 지금도 그들은 푸른 목초지를 따라 3,4일에 한 번씩은 야영지를
옮기며 순록과 함께 살고 있지. 바로 그들의 최근 100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야. 실제 존재하는 부족이지만 마치 문명 이전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 전기도, 천정도 없는 갈대로 둥그렇게 엮어 꼭대기에
구멍이 뚫린 고깔모자 같은 집을 반나절 만에 지었다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목초지를 찾아 떠나는 게 이 시대에 가능할까? 그뿐만이 아니야. 그들에게는 병을 고치고 비를 내리고, 아이를 갖게 할 수도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무당도 있어. 작가는
직접 어원커족과 함께 지내며 마지막 무당이었던 여자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이 소설을 쓰게 된 거야. 읽다
보면 신비롭고 믿어지지 않지만, 반대로 믿을 수 밖에 없는 일들로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기 힘들게
우리를 만들고 있지.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인상 깊었던 내용을 몇 개 소개해 줄게.
주인공의 언니가 병이 들었어. 열이 펄펄 끓어 혼수상태로 헛소리를 해댔지. 그녀의 아버지는 흰색의
순록 한 마리를 도살하고는 무당에게 청해 살풀이를 한 거야. 무당은 남자였지만 묵직한 신복을 걸치고
여장을 한 채, 황혼 무렵부터 밤늦도록 살풀이 춤을 추게 돼. 그러자
주인공의 언니는 부스스 일어나 물을 청하게 되고, 새끼 순록은 언니의 생명을 연장해주며 자신은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않고 말아. 어미 순록은 새끼 순록이 보이지 않자 줄곧 고개를 숙이고 새끼를 묶어 놓았던
나무 밑동만 슬픔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고, 흘러 넘쳤던 젖(순록의
젖은 훌륭한 유목민의 양식이기도 하지)은 멈추게 되었다가 주인공의 언니가 죽고 나서야 다시 젖이 샘처럼
솟아나왔어.
어때?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소설 속에, 아니 유목민족의 삶 속에 놓여 있는 기분이 들지 않니? 또한 어원커 부족은 순록의 가죽과 털, 녹각, 힘줄, 태반 등 모든 것으로 생필품과 바꾸어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들이 순록을 대하는 부분을 읽다 보면 그들은 단순히 생계 수단이나 돈벌이로 순록을 키우고 명맥을 이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순록은
말머리처럼 위풍당당하고, 사슴의 뿔처럼 아름답고, 나귀의
몸처럼 건강하고, 소발굽처럼 강인하다.
순록은
분명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선물이었다. 순록이 없으면 우리도 없었다.
비록 순록은 나의 가족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순록을 사랑한다. 순록의 눈망울을 볼 수 없다면 한낮에 태양을 볼 수 없는 것처럼, 한밤에
달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가슴 저 밑에서 탄식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한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기도
힘들텐데 말이야. 순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위와 같은 부분을 읽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순록 대신 넣어 읽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어.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될 것 같은 아름다운 사랑고백인 셈이지.
주인공은 새벽부터 별이 빛나는 밤이 되도록 이야기를
하지. 불씨를 바라보며 그녀가 살아온 90년의 이야기, 어원커 부족의 이야기를…
이제는 문명이 그들에게도
들어왔어. 많은 일들이 있었지. 일본군의 침략으로 부족 중
남자들은 군대로 끌려가기도 하고, 러시아 상인들이 데려온 여성과 결혼도 하여 함께 살면서 문화적 종교적
갈등도 생기게 되고 말이야. 무엇보다 문화대혁명이 지나며 중국에도 개혁, 개방의 물결이 이들에게도 찾아와서 순록과 어원커 부족이 나라에서 정해 준 구역으로 내려가 ‘문명’속에서 삶을 살게 되지. 하지만
주인공(끝까지 이름은 나오지 않아)과 몇 사람은 초원지대의
우리렁(그들이 만든 갈대로 엮은 집)에 남아 비와 눈, 해와 달, 순록과 함께 지내게 된다는 내용이야.
유목민족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면…
선생님이 내용을 다 이야기해 준 것 같아서 읽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천만에, 내가 이야기 한 것은 페이지
한 장만 살짝 들춰준 것에 불과해. 솔직히 수업시간에는 시험공부를 위해 ‘중국에는 인구의 90%이상을 차지하는 한족 이외에도 55개의 소수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 라고만 달달 외웠었지. 나 역시 더 이상 가르쳐 준 것도 없었고. 유목민족이 어떻게 생필품을
얻고 살았을까? 드넓은 목초지에 가끔 만나는 부족도 역시 유목민족이었을 텐데 말이야. 또한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지 않고, ‘풍장’이라는 의식을 행하지. 곰을 사냥하는 특별한 방법도 있어. 이 모든 이야기를 주인공이 하룻동안 해주고 있는 것을 읽고 있으면 대자연과 그 안에 하나 되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게 될 거야.
<순록 방목을 하는 중국 유일, 그리고 최후의 수렵부족, 어원커족>
<작품의 배경이 되는 멀리 보이는 다싱안링 산맥과 초원지대>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kimyto/220130673808
사람다운 것, 나 그대로의
나를 찾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쓰며 글을 맺으려고
해. 다싱안링 산맥에 사는 어원커족의 삶은 내가 숨쉬고 있는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은 생명이 있고 나의
친구라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지. 자신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도 귀중하며, 똑같은 아픔을 겪고, 기쁨도 같을 것이라고 말이야.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심지어 말하지 못하는 나무와 강물,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별, 비와 눈까지도 말이지.
너는
어떠니?
중고등학교 내내 부모님과, 선생님, 학원에서 늘 들어왔던 말은 공부해라, 꿈을 가져라, 진로를 미리 설정해라… 공부만 하기에도 벅찬데, 거기에 미리 진로와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를 정해놓고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관련된 동아리에 교내경시대회 준비에
소위 말하는 ‘스펙’ 쌓기에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지. 시험이 끝나도 제대로
된 소설책 들여다 볼 ‘사치’는 꿈도 꿀 수 없었을 거야. 그러는 사이 내 자신과는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고 살았을까? 내
안의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여기까지 왔을까?
한 번쯤은 천정이 뚫린 공원 나무 벤치나 방과후 텅
빈 운동장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상상해 보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넓고 푸른 초원에서 아침에 이슬을 먹고 겨울에는 눈을 먹으며 사는 순록을 볼 수 없는 우리는 이렇게라도 그들을
상상하며 하늘을 천정 삼아 누울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은 이제 말하고 싶다. 이제 너는 그럴 때도 되었어! 이제 너는 그럴 ‘사치’를 누릴 때가 되었다고 말이야.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칠게.
나는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본다. 달은 나를 향해 달려오는 흰 순록 같다. 고개를 돌려 가까이 다가오는 순록을 바라본다. 순록은 지상에 떨어진
반달 같다. 내 눈에서 눈물을 흘린다. 나는 더 이상 하늘나라와
인간세상을 구분할 수 없다.
<저자 소개>
츠쯔젠은 1964년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으로 ‘루쉰 문학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중국의 대표작가이다. 이 작품은 2008년 중국문학상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마오둔 문학상(제7회) 수상작이다. 소수 민족의 삶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는 그녀는 ‘대담하고 놀라운
중국의 이야기꾼’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작가는
내몽고 지역, 다싱안링에서 태어나 17살이 될 때까지 이
지역에 살았으며, 그 때의 어원커부족의 기억과 대자연의 삶이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 2005년 직접 그녀가 어원커 족의 탐방을
마친 뒤 집필한 작품이 바로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이다.
<평론가의 추천사>
인류가 지닌 정신적인 이상의 고결함을 보여주는 작품-인민일보
<백년의 고독>에 비견될 걸작.-학습시보
온유한 마음을 지닌 작가. 츠쯔젠의 소설에는 가장 인간적인 체온이 담겨 있다.-쑤통(작가)
인간의 고향을 노래하는 소설.- 성석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