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가의 치부 을유세계문학전집 141
에밀 졸라 지음, 조성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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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19세기 프랑스의 플라상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쿠데타-혁명기의 루공·마카르 가(家) 인물들의 삶을 다룬다.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지만 가난한 농부 루공을 남편으로 선택해 아들 피에르를 얻은 아델리아드. 

아들이 채 두 돌도 되기 전에 남편은 세상을 떠난다. 

아델리아드는 남편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카르라는 집안도 직업도 특별할 것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들 앙투안과 딸 위르쉴을 낳는다. 

정조 없는 여자라며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해도 아델리아드는 사랑과 본능에 충실했다. 

밀수를 하던 마카르가 국경수비대의 총에 죽고 나서는 눈과 마음을 닫고 집에 처박혀 버릴 정도로.


아델라이드의 첫 아들 피에르 루공은 능력은 없지만 권력욕과 출세욕, 부에 대한 욕망이 대단하다. 

기질적으로, 조실부모한 환경적으로 마음이 허약하던 어머니 아델라이드를 협박하다시피하여 재산을 빼앗고, 이복남매들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한다. 

피에르는 펠리시테를 아내로 맞이하는데, 

기회주의적인 면, 부를 맹목적으로 동경하는 면에서 부부가 천생연분이다.

아델라이드와 마카르 사이의 아들 앙투안은 곧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이복 형 피에르의 말을 듣고 군에 입대했다가, 형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군에서 나와 고향으로 돌아온다. 

마땅히 나눠 가져야 할 어머니의 재산을 피에르가 다 가져가 버린 것을 알고 

어떻게든 자기 몫을 주장해 되돌려 받고자 하지만, 

피에르 부부의 계략에 넘어가 푼돈만 받고 떨어져 나가는 신세. 

평생을 '돈', '돈' 하면서 자신이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고 가엾은 아내 핀과 어린 아이들을 착취하는 놈팡이.

자신의 몸을 갈아 넣어 남편과 아이들을 먹여 살리던 아내 핀이 먼저 죽고, 

아이들도 하나씩 떠나 버려 결국엔 혼자 남아 여전히 피에르를 적대한다. 

하지만 역시나 자신의 조그만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도 오늘의 동지.

아델라이드의 막내딸 위르쉴은 일찍이 무레라는 모자 제조공과 결혼해 아이 셋을 낳고 잘 살다가,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는다. 

위르쉴과 결혼할 때 지참금도 무엇도 필요 없고 위르쉴만 있으면 된다던 무레는 

아내가 떠나고 얼마 후,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직 너무 어렸던 막내아들 실베르에게는 특히나 더 가혹했던 아버지의 죽음과 부모 모두의 부재.


실베르는 외할머니인 아델라이드와 함께 살게 되는데, 

이 둘이 겪은 상실이 너무나 비슷한 모양이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아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델라이드는 소년 실베르와 그가 사랑한 어리지만 강한 소녀 미에트를 보면서 오래전 자신과 마카르의 모습을 회상한다.

아델라이드를 할머니가 아니라 ‘디드 아줌마’라고 친근하게 불렀던 실베르,

손자와 할머니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헌신했다.

자유 프랑스를 꿈꾸던 적극적인 '젊은 혁명가'의 표본 실베르와 그의 연인 미에트,

혁명 성공 이후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던 이 십대 커플은 

변화된 프랑스를 보지 못하고 결국 죽는다.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쫓는데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미에트를 잃고 얼이 빠졌던 실베르, 실베르의 죽음을 알고 하늘이 무너진 듯 울부짖던 아델라이드, 그들의 슬픔이 마음에 얼얼하게 남았다. 


이 소설의 수많은 인물들 중에 내 기준에 그나마 '멀쩡해' 보였던 건 어린 연인 실베르와 미에트 둘뿐이었는데.


대의를, 나라를, 민중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실상은 개개인의 욕심(권력, 지위, 부)을 채우기 위해 모의하고 무고한 이들의 희생은 하찮게 여기던 자들, 

그들이 모이던 피에르의 집 가장 화려한 공간 노란 거실. 


탐욕스러운 부부 피에르와 펠리시테의 똑같이 탐욕스러운 아들들 으젠과 아리스티드, 국가 혼란을 틈타 부와 권력을 얻어보기 위해 부모 자식 간에도 부부 사이에도 

사실과 의견을 숨기고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전. 

결말이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 그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런 뻔한 인물들보다 한 부모에게서 나온 형, 동생과 달리 정치욕이나 출세욕은 없이 그저 의사라는 직업과 학문적 탐구에 충실하며 비교적 윤리라는 걸 아는 

파스칼이라는 인물이 좀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루공 가(家)의 어느 기질도 물려받지 않은 동떨어진 인물 같다고 할까. 


19세기 프랑스 역사를 좀 알았다면, 

쿠데타와 2월 혁명에 대해 지식이 있다면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배경 찾아가며 책 읽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독파의 보람이 엄청나다.


나는 전혀 아닌 것처럼, 나는 고고한 것처럼 아래로 평가했던 몇몇 인물들에게서 

사실은 나의 어떤 면들이 보여 뜨끔하기도 했다. 

열심히 일하기는 싫지만 좋은 옷 입고 좋은 것 먹고 번지르르하게 잘 살고 싶어 하는 앙투안이라든가, 창 너머 부유한 동네를 동경하는 펠리시테라든가...

부단한 노력 끝에 지위와 부를 얻은 이들. 과연 행복하기만 하려나. 

책 읽느라 뭔가 나와의 싸움을 한 고단한 느낌이긴 하나, 이후의 다른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루공·마카르 총서의 첫 소설 《루공가의 치부》, 원문 제목 LA FORTUNE DES ROUGON.

불어를 전혀 모르지만 아무래도 LA는 관사일 거고 거고, DES는 ‘~의’ 뜻이겠지.

도대체 ‘치부’가 뭔가, 이럴 땐 한자가 필요하다.

여기저기 검색해 보니 

치부(致富):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됨 – 이걸로 해석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맞는 건가, 무슨 뜻인가 설명이 나오나 싶어서 서문부터 해설까지 꼼꼼하게 읽었는데 모르겠다. 한자 표시만 딱 돼 있으면 좋을 텐데.

프랑스어 fortune

1. 재산, 자산 / 2. 거액의 돈, 거금 / 3. 재산가, 부호

영어 fortune 

1. (특히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운[행운] / 2. 재산, 부; 거금 / 3. (개인·가문·국가 등이 겪는) 성쇠[부침]


'fortune' 때문에 '루공가의 운명', '루공가의 행운', 드물게 '루공가의 재산' 등으로 소개되어 왔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에는 영어 fortune의 3번 뜻이 가장 맞을 것 같다.

지위를 얻었다 해도 아직은 뭐 그렇게 돈을 엄청 번 것 같진 않아서.

총서 중 첫 책이니, 다른 책들을 다 읽어 보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 출판사(을유문화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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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rommm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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