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로그인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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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것은, 결국 사람.

마음이 외로운 아이들,  그들의 외로움, 어려움을 이용해 추한 욕망을 채우는 어른들.

 

“N번방” 관련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검거되고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과 그 사회적 파장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던 주동자들의 그 눈빛, 목소리, 거짓 반성의 말들.

 

중국, 홍콩 작가의 소설은 몇 권 읽어보았지만 대만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작년 대히트를 쳤던 <귀신들의 땅>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도 대만 소설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 규모에 비해, 대만 작가들의 중화권 문학상 수상도 빈번하다고 해 소재도 글도 궁금했다. 


생애 첫 대만 소설의 느낌은?

어찌 보면 흔한 소재들을 잘 섞어 버무린 듯.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작가의 전작이 이미 드라마화되었다는데, 이번 소설도 ‘극’으로 풀어내기 쉬워 보인다.

 

사실 <귀신들의 땅>은  역사 배경과 가족 갈등, 성소수자 이야기 등 생각할 것이 많을 듯해 좀 여유가 있을 때 읽으려 미뤄 두었는데, 이번 소설은 ‘대만판 N번방’이라는 홍보문구에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 

현실을 반영한 범죄 장르에 오히려 익숙하니까.

 

타인의 죽음을 보는 남자 천신한, 등 뒤로 시커먼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면 그 사람은 곧 죽게 된다.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명문대생으로 가족의 자랑이던 그는 스무 살, 

큰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로 이런 능력, 어찌 보면 ‘재앙’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해 봤자 믿어줄 사람은 없을 거고, 고등학교 동창 허칭옌에게만 모든 것을 털어놓고 교류하고 있다. 고마운 친구라 여기며.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더 공부하고 더 대단한 일을 하기 바랐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작은 회사에 다니던 그는 그나마 가까이 지냈던 회사 선배의 죽음을 겪으면서 은둔을 시작하고 만다.

그녀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미리 보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은 그녀가 처참히 살해당한 것.

 

그의 은둔으로 가정은 흔들린다. 

아버지는 밖으로 돌기 시작하고, 한결같이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고 대화를 시도하며 노력하는 어머니의 마음도 병들어 간다. 

삶이 무의미하다 느끼고 죽기로 결심한 날, 공원에서 만난 노숙자에게 자기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으면서, 

또 그 노숙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천신한은 삶을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한다.

 

그가 찾은 새 길은 게임 위드그라실. 

둥촨이라는 이름으로 가상 세계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돈벌이도 조금씩 한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여전히 은둔형 외톨이, 집안의 수치. 

 

어느 날, 게임에서 속 얘기를 털어놓으며 가깝게 지내던 시리가 직접 만나자고 한다. 

시리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자신이 없던 천신한은 그동안 친구 허칭옌의 사진을 자기 사진이라며 보여주었고, 시리와 만나는 자리에도 결국 허칭옌을 내보낸다. 

허칭옌은 천신한을 믿고 의지한 시리를 속이는 거라며 탐탁지 않아 하지만, 친구의 처지를 생각해 결국 수락한다.

 

시리를 만난 날, 친구를 내세워 그녀의 고민을 들은 천신한은 시리가 만나고 있는 남자가 평범하지 않다고 느낀다. 시리가 위험하다고. 

게다가, 시리에게서 죽음의 검은 안개를 보고 말았다.

 

만남 이후 시리가 자신의 집에서 사라지고, 게임 속에서만 겨우 만날 수 있다. 

그녀를 죽음에서 구해 보려면 먼저 풀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가족 이야기, 개인적인 고민까지 모두 털어놓았던 둥촨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크게 다친 시리의 마음부터 풀어야 시리가 둥촨의 말들을 들어줄 텐데.

 

천신한과 허칭옌, 시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여 결국 그녀를 구해낸다.

그녀가 빠졌던 위험은, 이제는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현실’ 그대로인 구렁텅이. 


나쁜 놈들의 자기만족을 위한 추악한 행태와 거기서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그것이 매일의 뉴스를 채우는 익숙한 현실이라고 해도 언제나 새롭고 놀랍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나쁠 수 있다는 것이. 

 

시리의 약점은 외로움과 허전함이었고 가장 원한 것은 타인과의 깊은 관계와 교류, 따뜻한 관심이었다. 

그렇게 약한 것과 원하는 것을 파고든 나쁜 어른에게 이용당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만이 중요한 이들은, 아이가 망가지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어쨌든 해피엔딩.

타인의 죽음을 미리 알게 된 이후, 천신한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설명해도 이해받을 수 없는 삶, 아니 미쳤다는 얘기나 들을 테니 자기 이야기를 할 생각도 할 수 없는 삶,

얼마나 외로웠을까. 천신한의 마음도, 가족과의 관계도, 하루하루 나아지기를.


제목과 표지디자인은, 아쉽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했으니, 홍보·마케팅은 잘 된 건가.

▶ 출판사(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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