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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얼굴 - 얼굴로 본 인간 진화의 기원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평점 :
주로 소설이나 인문학, 예술 서적을 즐겨 읽었던 터라, 과학에 대한 지식은 솔직히 많이 부족하다. 그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도 읽지 못했고, 몇몇 과학책들은 어렵고 따분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읽은 『인간얼굴』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는 낯선 방식의 신기한 경험이 찾아왔다. ‘인간은 어디서 왔을까?’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보긴 했지만, 그 질문이 ‘공부’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냥 막연히,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다윈의 진화론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그 ‘원숭이 같은 동물’은 또 어디서부터 나온 걸까? 이 책은 인간이 언제부터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면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는 본래 물속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인간은 ‘물고기였다’는 것이다.
최초 육상 동물의 진정한 조상은 육기어류 또는 총기어류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며, 이 중에서도 5천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다가 1938년에 현존하고 있음이 밝혀진 실러캔스가 좋은 예다. 이들의 외제는 연골성 지느러미가 아닌 바다나 강하구의 진흙 바닥 같은 땅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근육질의 지느러미였다. 느리고 머뭇거렸다고는 해도 새로운 환경에 첫발을 내디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런 물고기들이었다. (p.231)
이 사실이 묘하게 흥미로웠다. 이 책은 이런 흥미를 계속해서 이어간다. 당시 물고기들은 턱이 없어 미생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턱’이 생기게 되었고, 그 후부터 물고기들은 무언가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턱’의 등장을 진화의 핵심 전환점으로 강조한다. 무언가를 씹어 먹기 위해 발달한 턱, 그로 인해 생겨난 능력들. 그리고 그런 턱을 가진 생물체들이 육지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포유류 사촌들이 공유하는 얼굴 표정은 진화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얼굴 표정의 활용, 특히 말을 하면서 짓는 표정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으로 혈통이나 진화 계통안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얼굴과 뇌를 연관시키는, 전에 없던 진화적 사건들이 일어났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인류 이전의 유인원에 더 가까웠던 조상들은 오늘날 인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혈통을 호미닌 계통이라고 하며, 침팬지에서 갈라져 나와 현대 인류의 조상이 되는 영장류의 분파를 의미한다. 인류 진화의 전모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영장류와 포유류, 비영장류, 심지어 척추동물까지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요소들과 인간의 얼굴만이 가진 특별한 요소들을 모두 고려 해야 한다. (p.30-31)
하지만 ‘턱’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인간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뇌’다. 아직 뇌에 대해 밝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한 유일한 동물이다. 놀라운 점은 뇌와 얼굴이 ‘공진화’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얼굴의 표정을 표현하고 읽어내기 위해 뇌의 기능이 함께 진화했다는 것이 인상 깊다.
감정 표현을 하거나 다른 개체들이 이를 “읽기” 위해서는 두뇌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므로 얼굴과 얼굴 표정의 진화적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뇌의 진화를 이해해야 한다. 얼굴이 어떻게 진화했는가를 설명하는 일에는 뇌의 기능들, 특히 얼굴 표정을 만들고 이해하는 일과 관련된 두뇌의 특성이 어떻게 얼굴과 나란히 진화했는가를 분석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이처럼 생명체가 가진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개의 특성이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공진화라고 하며, 얼굴-뇌 공진화는 얼굴의 진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p.57)
그렇다면 ‘주둥이’는 왜 사라졌을까? 인간 이전의 종들은 주둥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역시 점점 덜 필요해지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손의 발달’에서 찾는다. 무언가를 입으로가 아니라 손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입이 줄어들고 얼굴의 형태가 지금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뇌와 손의 발달.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문명을 만든 진짜 이유가 아닐까? 저자는 그 변화의 근본 원인을 ‘기후 변화’에서 찾는다. 극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조상들은 협력하고, 그에 따라 언어를 발전시켜야 했다. 그렇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뇌가, 또 그 언어를 전달할 손과 표정이, 진화해온 것이다.
털과 털가죽의 진화와 인간, 특히 인간의 얼굴 사이에는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진화하는 특이한 관계가 존재한다... 얼굴 털의 퇴화에 따른 한 가지 결과는 얼굴이 털로 덮여 있지 않기 때문에 표정을 더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얼굴을 매개로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은 얼굴에서 털이 사라지면서 더욱 향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p.248)
이처럼 인간의 얼굴은 진화의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포식자를 구별하거나 식량을 구분하는 기능에서 시작해, 점차 감정과 의도를 전달하는 사회적 기능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표정’이라는 언어가 존재한다.
물론 이 책에서 주장하는 모든 내용이 정답일 수는 없다. 여러 가설과 복잡한 이론들이 등장하고, 개념도 많아 읽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 100페이지는 용어를 찾아보며 읽었고, 그 이후부터는 속도가 많이 더뎌졌다. 다만 책 뒤쪽에 정리된 단어 설명을 꼭 참고하길 추천한다. 또 요즘엔 유튜브나 웹에서도 유전자, 신경세포에 대한 설명 영상이 많으니, 함께 보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나 역시 네이버 사전과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며 읽어 나갔다.
책을 덮고 난 후, 문득 옆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람도 태아일 때는 코 아래부터 얼굴이 자라났겠지. 그렇게 한 점에서 시작해 위로, 아래로 얼굴의 형태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얼굴이 없었고, 우리 모두는 물속에 살았다. 나는 미신도, 전생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는 확실히 느꼈다. 우리 몸 속 유전자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기원을 추적하며,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묘한 독서 경험이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