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경찰관 을유세계문학전집 147
플랜 오브라이언 지음, 이정화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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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글 앞에 대작가 드 셀비의 말로 서문을 여는 아일랜드 소설 <세번째 경찰관>. 1911년생 북아일랜드 출신 작가 플랜 오브라이언이 1939-1940년쯤 집필한 작품으로 작가의 사후 출간되었다.

작가 드 셀비를 추앙하는 주인공이 펼치는 삶에 대한 회고록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연유로 살인에 가담하게 되고, 범죄 수익금이 든 금고를 분실하고 경찰서에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어쩌다 범죄 누명을 써 교수형에 처하기도 하고 또 탈옥하는 이야기까지. 주인공의 무용담이라고도 할 만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주인공이 머무는 세계에는 흡사 *어드벤처 타임이라고 할 만큼 몽환적이고 묘한 사건과 인물들 그리고 공간들이 가득하다. 정교하게 설계된 기묘한 꿈속 같은데,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본인 앞에 주어진 세상을 착실히 살아간다. 사소한 비평과 비난은 하지만 자신들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으며, 매우 정중하고 학구적인 태도로 그 세상의 기괴함을 설명하기까지 한다.

사건의 한 축이자 무대가 되는 기괴한 경찰서는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책 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묘한 장소였다. 세번째 경찰관의 근무지는 더욱 더 신비하지만 진솔했고 그의 직업관은 너무도 진정성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사건들의 중심인물이자,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내 삶에 있어 가장 진정성 있던 이는 바로 주인공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기억 못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망상을 대하는 진솔함일지라도 말이다. 탈옥에 성공해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의 모습은 이 소설의 최고점이었다. 현실을 너무도 열심히 달려왔는데 환상 속을 돌고 돌아온 것과 같은 결론에 마주하다니.

글도 너무 잘 쓰고 작가가 만든 세계가 온전해 보여서 어떤 환상 속에 들어있다 나온 기분이 든 소설 <세번째 경찰관>이었다.
지옥은 고통이 반복되는 곳이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곳. 어쩌면 사후세계가 아닌 지금 현실 속 망각과 실수야말로 지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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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이프 : 글리치
박새봄 외 지음 / 멜라이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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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이프 : 글리치』는 박새봄, 박현진, 박현주, 이윤정의 픽션 앤솔로지, 즉 단편 소설집이다. ‘글리치’라는 주제 아래 저마다 꺼내놓은 이야기 보따리가 꽤나 흥미로웠다.

<뭘 좀 보게 된 홍단비>
용기를 건네는 이야기. 홍단비, 진상아, 고세찌 시대를 아우르는 멋진 여성들과 함께한 시간이 신났다. 시선을 넓혀주고 마음에 노크를 건넨다. 순간의 버그처럼 찾아온 오류를 기본값으로 받아들이는 용기와 주변의 응원은 글리치를 또 하나의 예술로 만들 수도 있다.

<더블 캐스팅>
그의 삶은 어디에 있을까?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삶을 가린 장막을 걷어도 우리는 그를 온전히 알 수 없었다. 어떤 관객이 아무리 진심으로 바라본다 해도 결국 한 사람의 단면만 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먹먹하게 다가왔다. 그가 대역 배우처럼 연기하던 삶을 내려놓고 무대 밖 진짜 삶으로 걸어 나가기를.

<평행선 서점의 방명록>
감정의 밀도가 높아 가장 강렬한 여운을 남긴 작품. “우주는 개체의 선택에 의해 갈라질 겁니다. 우리가 바랐지만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는 곳.” 이 단편에는 바로 그 세계, 우리가 바라왔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전지적 루돌프 시점>
바꿔야 할까, 멈춰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삶의 갈림길 앞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질문들. 끝없는 도돌이표의 질문들은 결국 지금이라는 순간으로 수렴된다. 결국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현재뿐이 아닐까. 지금 여기서 그저 살아볼 것.

비단 『어린왕자』 같은 고전만이 읽을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리치』는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소설집이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말이다. 그래서 두고두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출판사 멜라이트에서 서평단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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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세계의 농담 - 삶의 모퉁이를 돌 때 내게 다가와주는 고전들
이다혜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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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세계의 농담

어떤 이가 공들여 징검다리를 놓아주었다. 내 발 앞의 저 개울가 건너면 누군가 써두었던 과거로, 그 오래된 미래에 접속하게 된다. 이지혜 작가님이 놓아둔 그 다리를 오갔던 2월이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헤르만 헤세를 만났고, 오래된 인연들인 레프 톨스토이와 제인 오스틴, F.스콧 피츠제럴드도 만났다. 고전이란 빛으로 저 멀리 있던 작품과 그 글을 쓴 작가들에게로 놓여진 징검다리였다.

고전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책은 수없이 많지만, 이렇게 그저 글만으로, 담긴 콘텐츠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은 책이 또 있을까. 책 소개뿐 아니라 작가분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편하고 즐거워 계속 귀 기울였다. 물론 책에서 말해준 고전들은 앞으로의 독서 여정에 넣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데버라 리비, 레이먼드 카버, 미셸 슈나이더, 이디스 워튼 이들의 글은 2026년의 어느날들에 콕콕 세겨둘꺼다. 또, 존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다시 보려고 한다. 자기계발서라고 미뤄둔 데일리카네기의 베스트셀러들도 드디어 봐야지 싶었다.

그리고는 얼마 전 건넜던 징검다리를 다시 건너봐야지.
이 모든 건 그저 책 하나 읽어서 이루어진 일, 그래서 이 책_<오래 된 세계의 농담>이 참 고맙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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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플
글라피라 스미스 지음, 권가람 옮김 / 바람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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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트러플과 호세 루이스 부부는 함께 살았다. 서로를 완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기대어 살아갔다. 사랑한다는 말의 메아리 속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너머를 온전히 알 수 없다.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타인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무지 위에서 삶의 연대와 사랑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트러플은 그것을 먼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본능에 가까운 지혜로 가족의 곁을 지키며, 오직 사랑으로 함께했을 것이다. 기다리고, 반기고, 함께 놀고, 다시 기다리며. 세상의 많은 강아지들 역시 오늘을 그렇게 보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곁에서.

같은 시간을 나누지만 결국 각자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존재들. 그 사실을 알기에, 이 책에서는 ‘사랑’과 ‘기댐’이라는 단어가 오래 남는다. 트러플 가족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무채색과 무지개색이 교차하는 삶의 단면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된다. 읽고 난 뒤에는 먹먹한 여운이 남는다.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남기는 그래픽 노블, 『트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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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가격 - 부자들만 알고 있는 돈의 작동 원리
롭 딕스 지음, 신현승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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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자산, 경제 이슈는 도서보다는 현장, 즉 시장 상황을 직접 보거나 정책을 유심히 살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 신년을 맞아 읽었던 경제 서적도 결국 '그렇구나' 정도의 감상만 남긴 채 중고서점행이 되었기에 더 그랬다. 1~2년만 지나도 유효기간이 지나버리는 말초적인 정보들에 피로감을 느꼈고, 소위 경제 교양서에서 별다른 효능감을 찾지 못했었다.

그런데 <돈의 가격>은 묘하게 마음이 갔다. 출판사 '인플루엔셜'에 대한 신뢰가 컸고, 영국 독립출판으로 시작해 14만 부를 돌파했다는 드라마틱한 이력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눈을 크게 뜨고 읽었다. '돈'에 대해 이런 가르침은 처음이었다. 역사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짚어주며 경제의 가장 기본인 '돈'에 대해 날카로운 인사이트를 전해준다. 복잡한 시스템의 핵심을 관통하면서도 과외 선생님처럼 친절하고 흥미롭다. 덕분에 글로벌 경제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내 주머니의 위치를 인식하고, 돈의 가치를 재정립할 수 있었다. 새로운 눈을 떴으니, 이제 도수가 맞지 않는 오래된 안경은 벗어 던져야겠다. 내 주머니 속 숫자들을 다시 배열해 볼 시간이다. 고마워요, 롭 딕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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