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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표현형 - 출간 40주년 기념 리커버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장대익.권오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0월
평점 :
아이들의 울고 떼쓰기 전략은 생존전략 중 하나이다.
원하는 양육을 받으려면 그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하지만 우는 아이는 부모를 잘못 만나면 죽거나 학대를 당하기도 한다. 아기 새 역시도 먹이를 달라며 시끄럽게 짹짹거린다. 그 소리는 다른 포식자의 귀에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죽으라고 먹이를 잡아다 날라야 한다. 그럼에도 울고 떼쓰기 전략이 성공적인 이유는 학대 당할 확률보다, 포식자에게 들킬 확률보다 원하는 바를 얻을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새끼들의 울고 떼쓰기 전략은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부모를 조종한다. 유전자는 자신을 낳아준 개체는 크게 필요가 없다. 이미 세대교체의 임무를 마쳤기 때문이다. 이제 자신의 생존과 번식이 주된 목적이 된다. 사람의 생각으로 해석하면 괘씸하지만, 유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바로 이 지점이 유전자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의 사본을 효과적으로 남기기 위해 다세포 기관을 만들었고, 생존과 번식만을 생각하며, 개체는 단지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확장된 표현형은 유전자가 행사하는 영향력이 개체에서 그치지 않고, 외부로 더 뻗어나간다.
달팽이의 기생충은 본인의 생존 최적화를 위해 달팽이의 껍데기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유전적 영향을 끼친다. 달팽이가 껍질을 필요 이상으로 단단하게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달팽이 자신에게는 불리하다. 게의 기생충은 숙주인 게를 거세시키며, 새우의 기생충은 새우를 수면 위로 올라가게끔 조종해서 최종 숙주에게 잡아먹히게끔 한다. 동물계에 이런 일이 한두 건이 아니다. 유전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외부로 뻗어나간다.
아니 근데, 왜 이런 동물들은 기생충들에게 이렇게 당하고만 있나?
물고기가 미끼에 걸리는 이유는 멍청해서가 아니다. 먹이 비슷한 게 있으면 일단 물고 보는 개체가 더 살아남을 확률이 큰 것이다. 먹이인지 미끼인지 구별하는 감각기관을 발달시키려면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인데, 평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미끼 구별을 위해 감각기관에 투자하는 건 그들이 사는 환경에서 비효율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투자의 의미를 쉽게 비유해 보겠다.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을 할 때, 초기 스탯이 있다. 힘에 스탯을 투자하면 상대적으로 민첩성이나 생명력, 에너지 등에 투자를 할 수 없다. 스탯은 정해져 있고, 거기서 캐릭터 성향에 맞게 투자를 해야 한다. 동물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해진 스탯이 있어서 추가로 감각기관의 발달에 투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흥미롭게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확장된 표현형에까지 관심을 보일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또한 이 책을 꼭 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부제를 달아보자면 "리처드 도킨스의 변"이라고 하고 싶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으로 공격당한 것에 대한 변론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그의 날카롭고 논리 정연한 주장에 더 이상 학자들이 토를 달기 어려울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어렵다. 내가 왜 학자들 싸움에 끼어들어 구경하고 앉아있나 싶다. 단지 이기적 유전자를 재미있게 본 죄로...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를 재밌게 본 사람에겐 추천하지만 아직 진화생물학 관련 책을 많이 보지 못한 분들은 좀 나중에 보기를 추천한다. 제공받은 도서라 좀 장점 위주로 말해야 하는데 거짓말은 못하겠다.
2021년도 후기
뻐꾸기는 다른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다. 먼저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눈도 안 떠진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다른 알들을 등으로 밀어서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식량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이다. 대리모는 뭣도 모르고 뻐꾸기를 먹이는데, 나중엔 뻐꾸기가 양부모보다 더 커지지만 여전히 먹이를 제공한다. 왜? 먹이를 달라고 벌리는 입속의 색깔이 지나치게 화려해서 도저히 먹이를 바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밥 달라고 울어대는 시끄러운 소리가 다른 포식자를 부르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럼 양부모는 왜 이렇게 뻐꾸기에게 당하기만 하게 진화했을까? 물론 이들 사이에 군비경쟁이 있어왔다. 하지만 뻐꾸기의 개체가 양부모들의 개체보다 훨씬 적다. 양부모는 평생에 뻐꾸기를 한 번 키울까 말까 한 확률이라서 지금까지 뻐꾸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비바리움- 감독
- 로칸 피네건
- 출연
- 이모겐 푸츠, 제시 아이젠버그
- 개봉
- 2020. 07. 16.
영화 비바리움 의 첫 장면은 이 뻐꾸기로 시작하며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인간 부모에게 자신의 아기를 맡겨서 키우게 한다. 금방 성장해버리고, 엄청난 소리를 지르고, 부모의 모든 것을 따라 말하는 이 아이는 실제 육아 현장과 다를 바는 없다. 아이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대자 양부는 아이를 차에 가두어버린다. 억지로 아이를 키우는 영화 속의 부모들의 모습도, 실제 부모들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의 숨겨진 부분을 대변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 부모들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지만, 소리 지르고 떼쓰는 아이를 내버릴까 하는 마음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행에 옮기지 않을 뿐이다. 물론 실행에 옮기는 뉴스에 나오는 부모들도 있긴 하다.
영화 비바리 비움과 확장된 표현형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왜 뻐꾸기나 인간의 아이는 자신이 어떤 부모를 만나 어떤 대접을 받을 줄 알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 것일까? 또 다른 포식자에게 먹힐 수도 있고, 학대하는 부모를 만날 수도 있을 텐데? 물론 그런 위험도 물론 있을 테지만 그 위험은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쪽이 더 양육을 무사하게 받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확장된 표현형을 압축하자면, 유전자가 자신의 이익(환경적 적응)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유기체뿐만 아니라 다른 개체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뻐꾸기 유전자가 양부모를 조종하여 자신의 이득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 말이 난해할 수도 있다. 어떻게 내 몸 밖의 다른 개체들을 사용한단 말인가. 우리 몸은 수천 조의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유전자 입장에선 이미 우주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수천조 개의 세포를 제어한다면 좀 더 확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유전자 하나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복제하는 유전자는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공동이익을 나눠 가는 결합체이며, 복잡한 기관과 행동 유형은 군비 경쟁에서 선호되기 때문에 유전자풀에서 살아남아 왔으며, 번식이라는 새롭게 단세포부터 시작하는 생활 주기가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진화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보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이전 책 #뇌와 세계 도 한달이 걸렸는데 둘 다 힘들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다른 모든 책을 안 봐도 이 책을 꼭 보라고 했지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리처드 도킨스를 좋아한다면 이 책을 마지막에 봐라이다. 증명하는 과정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의심을 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 책은 도킨스의 이론에 의심을 품거나 뭐가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는 독자가 먼저 볼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