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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과 금붕어
나가이 미미 지음, 이정민 옮김 / 활자공업소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 책은 치매를 앓고 있는 한 할머니, 가케이의 이야기다. 그녀는 한때 한 집안의 부녀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였고, 또 지금은 할머니이지만 그 이전에는 그저 한 소녀이기도 했다.
가케이 할머니는 치매로 인해 상황에 맞는 기억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임에도 며느리에게 “우리 아들 잘 있냐”고 묻는 장면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픈 기억도, 나쁜 기억도, 좋은 기억도 모두 멀리 보내버린 것이 어쩌면 할머니에게는 더 평온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의식의 흐름대로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처음에는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병원에서 치매약을 타러 갔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점차 그녀의 말에 빠져들게 된다. 마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식으로 연결되는 무질서한 말들이었지만, 그 속에는 할머니의 삶 전체가 담겨 있었다.
가케이 할머니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서 자라며 개 젖을 먹던 기억이 있고, 오빠가 시키는 대로 하며 성장했다. 오빠에 대한 오해로 상처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 그 오해를 풀게 되면서 할머니는 마치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혼자인 듯하면서도 혼자가 아닌, 그 묘한 외로움 속에서 그녀의 인생이 담담히 흘러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마음이 아프다가도, 한편으로는 잔잔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다사다난하더라도 결국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는 흐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단지 ‘불쌍하다’, ‘가엾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 또한 ‘잘 살아낸 인생’임을 조용히 증명해 보이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