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하는 뇌 - 오늘의 선택을 내일의 자산으로 만드는 생각법
가미오카 마사아키 지음, 류두진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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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투자하는 뇌』는 일본의 투자자들에게 투자에 필요한 마인드셋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준 책이면서, 투자를 통해 갖추어야 할 투자자 리터러시를 길러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단순히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기보다 투자자가 갖추어야 할 마인드와 사고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바탕으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투자에 관한 책으로 볼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계발서로도 볼 수 있는 책이다.

책에서는 ‘투자하는 뇌’를 수렵형과 농경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수렵형의 특징으로는 도전적이고 강인한 성향을 이야기하고, 농경형은 주로 아시아인들에게서 나타나는 협동성과 강한 인내심을 이야기한다. 각각의 유형은 서로 다른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투자하는 뇌는 어느 한쪽에 치우친 뇌가 아니다. 수렵형과 농경형이 가진 장점을 함께 활용하여 단순히 돈을 쓰기 위한 뇌가 아니라, 돈을 벌고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뇌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투자하는 뇌는 소비하는 뇌와 반대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소비하는 뇌가 현재의 만족과 소비에 집중한다면, 투자하는 뇌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보다는 미래를 지금과 다르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현재의 시간과 돈, 경험을 미래를 위한 자원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투자하는 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책에서는 생각하고,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금융자산을 늘려가는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저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경험 중 하나가 바로 ‘책’이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는 행위가 단순한 지식 습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만들어주고, 결국 자신의 미래를 변화시키는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자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는 셈이다. 어떤 경험보다도 책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투자하는 뇌’가 말하는 투자의 경험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사고방식이 ‘투자하는 뇌’의 방향으로 바뀌면 현재의 삶에서 내가 가진 자원을 어디에 배분해야 할지도 달라진다. 시간과 돈, 경험과 같은 자원을 단순히 현재의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기 위해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배분한 자원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마련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반적인 투자서와는 조금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디에 투자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와 같은 구체적인 투자 방법론은 상당히 덜어내고, 오히려 투자에 필요한 사고방식을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투자서라고 할 수 있다. 투자라는 행위를 통해 돈을 불리는 방법보다, 돈을 바라보고 사용하는 나의 뇌 자체를 바꾸는 것에서 투자의 출발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한 부의 시작점은 금융상품이나 투자처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투자하는 뇌’를 갖추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과 시간, 경험을 당장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 소비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나에게 더 큰 가치를 돌려주기 위해 사용할 것인지는 결국 사고방식의 문제다. 『투자하는 뇌』는 바로 그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현재의 쾌락을 소비하는 뇌에서 벗어나 미래의 쾌락과 자유를 준비하는 뇌로 바꾸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투자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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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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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조정래 작가의 《서리꽃 2》에서는 윤소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오직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녀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이재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제목인 ‘서리꽃’은 추위 속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꽃이다. 윤소인이 지나온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그 추위와 같았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그 시간을 견뎌낸 끝에 피어난 서리꽃과도 같다. 결국 ‘서리꽃’이라는 제목에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피어날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사랑이 담겨 있는 셈이다.

조정래 작가는 소설 「누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국의 역사와 사회, 민중의 삶을 다룬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특히 철저한 취재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역사적 현실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것이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러한 조정래 작가 특유의 치밀한 자료 조사와 세밀한 묘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왔던 그의 작품 세계를 넘어, 이번에는 인간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과연 조정래 작가가 그려내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게 된다.

소설은 윤소인이 이재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보림사라는 절에서 자연과 함께 생활하고, 이재인의 도움을 받으며 윤소인은 조금씩 몸과 마음을 회복해간다. 이재인은 그런 윤소인을 바라보며 앞으로 더 잘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다면 윤소인이 가족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살아갈 의지를 갖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이재인에게 무엇보다 행복한 나날로 느껴진다.

하지만 윤소인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건강을 회복하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그림 속에 자신의 감정과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바라보며 다시 심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결국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시간은 멈추게 된다. 윤소인은 이재인에게 자신이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긴다.

이렇게 보면 《서리꽃 2》는 연애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돈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윤소인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함께 이야기한다. 동시에 이재인의 사랑을 통해 돈과 사랑 가운데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림의 해석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자유라고 한다면,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발견한 의미 역시 나만의 해석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흐의 작품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이재인과 윤소인의 삶에 연결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통스럽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도 끝까지 버텨내는 것.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내려는 것. 결국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그런 ‘용기’와 ‘뚝심’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끝까지 버텨낸다면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래서 《서리꽃 2》에서 보여준 이재인의 사랑은 책 표지에 적힌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우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랑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도 그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상대가 겪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채 그 고통까지 함께하고 싶어 하는 사랑이다.

과연 현실에서도 이런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재인의 사랑은 초월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면 이 소설이 말하고 싶었던 사랑은 행복할 때 함께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가 가장 아프고 힘든 순간에도 그 곁을 지키는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끝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 작가가 보여주는 은유적인 표현은 두 사람의 사랑이 다시 이어짐을 상상케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은 사랑으로 끝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사랑이 얼마나 아프고 슬픈 감정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말처럼 느껴졌다.

결국 《서리꽃 2》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랑, 끝까지 버텨내는 사람의 의지, 그리고 돈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 소설이었다.

추위를 견뎌야 비로소 피어나는 꽃이 서리꽃이라면, 이재인과 윤소인의 사랑 역시 고통과 시련을 지나왔기에 더욱 깊어진 것이 아닐까.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대의 행복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흘리는 눈물까지 함께 견뎌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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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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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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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
수레카 데이비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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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괴물의 탄생》의 저자 수레카 데이비스는 역사학자이자 과학과 미술의 개념사를 연구해 온 학자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괴물에 관한 기괴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아니다. 역사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이 ‘괴물’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살펴보며, 괴물이 인간과 구별되는 별개의 존재인지, 아니면 인간과 인간의 경계에서 만들어진 존재인지를 질문한다.



작가는 처음부터 괴물을 인간과 분리된 존재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해 인간이 자신의 경계 밖에 존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규정해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괴물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고 경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괴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책이기도 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우리’와 ‘너희’를 구분해 왔다. 내가 속한 집단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와 다른 집단을 비정상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경계 밖의 존재가 때로는 ‘괴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괴물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라기보다, 인간이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 속에서 탄생한 결과물에 가깝다.



이러한 경계는 지역이나 국가, 인종, 문화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서로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그 차이를 열등함이나 비정상성으로 연결하면서 지배와 착취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인종적 차이를 근거로 사람을 구분하고 식민지배와 노예제를 정당화했던 것 역시 이러한 ‘경계 만들기’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괴물’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쩌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배제하거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성별이나 신체적 차이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이러한 경계는 나타난다. 인간의 유전적 차이나 장애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보다 그것을 부모의 잘못이나 사회적·도덕적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고, 결국 그 사람을 비정상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과연 인간에게 ‘정상적인 몸’이란 어떤 형태여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몸이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기준은 정말 자연스럽고 절대적인 것일까.



결국 책에서는 괴물을 비정상적이고 위험하며 배제해야 할 존재로 규정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집단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괴물’이라는 기준 역시 절대적일 수 없다. 누군가에게 괴물로 규정된 존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괴물은 인간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경계는 결국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오늘은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일은 다른 누군가에게 ‘비정상’으로 규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최근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일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하나의 범주로 묶고, 자신들이 정해 놓은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문제 있는 존재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인간’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경계는 정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일까.

어쩌면 자신들이 만든 작은 기준 안에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그것을 정상이라고 믿는 모습은 ‘우물 안 개구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괴물’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과거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하고,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이나 이야기를 보지 않은 채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범주에 넣어버리는 순간 또 하나의 경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괴물의 역사를 읽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만들어 놓은 경계는 무엇인지,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떤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정상’이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고, 또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결국 괴물이라는 존재는 인간이었고,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은 과연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괴물이었을까?

《괴물의 탄생》은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인간을 바라보게 만들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정상’이라는 기준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도 한 가지 질문이 생각났다.

우리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정말 괴물인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부르기로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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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떠나면
크리스털 하나 김 지음, 허선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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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 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네가 나를 떠나면》의 작가 크리스털 하나 김은 한국계 미국 소설가로, 

한국전쟁과 이민, 가족과 여성의 삶을 주요 소재로 작품을 써온 작가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을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성장했고, 

이러한 경험이 작품을 집필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계 작가들이 한국의 역사나 이민자의 삶, 고향과 가족에 대한 기억 등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크리스털 하나 김 역시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함께 그려낸다.



해미는 엄마와 동생 현기와 함께 6·25전쟁을 피해 피난을 오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경환과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경환의 사촌형 지수가 해미를 결혼 상대로 생각하고 있었고 

해미의 엄마 역시 지수의 재력이 딸의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해미에게 지수와 결혼할 것을 권한다. 

결국 해미는 경환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고 지수와 결혼한다.



하지만 지수는 결혼 후 군에 입대하고, 

경환 역시 군에 입대하면서 해미는 혼자 남아 지수를 기다리며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지수는 딸만 둘인 상황에서 아들을 원하고, 해미가 더 이상의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함에도 자신의 뜻을 강요한다. 

그렇게 해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 하나의 삶을 짊어지게 된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경환과 다시 만나면서 두 사람은 다시 관계를 이어간다. 

이미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과거의 사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함께할 수 없게 된다. 

경환이 해미에게 보내온 편지를 딸 소리가 전달하지 않고 찢어버리면서, 

두 사람이 선택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삶의 가능성 역시 사라지고 만다.



여기에 서울로 공부하러 갔던 현기가 시위에 참여하면서 죽게 되고, 

동생을 잃은 해미의 삶은 더욱 깊이 무너져 내린다. 

현기의 죽음은 단순히 한 가족의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회의 혼란과 폭력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 역시 또 다른 상실을 겪어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가족, 여성의 삶, 사회적·정치적 혼란 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상실을 함께 보여준다.



책을 읽기 전부터 제목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과연 누가 떠난다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데,

 처음에는 서로 사랑했지만 

결국 이어지지 못했던 해미와 경환을 가리키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이 작품 속에서 떠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강제로 이별하게 되며, 죽음으로 인해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떠나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결국 이 소설에서 ‘떠남’은 단순한 연인의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죽음, 가족과 사랑,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발생하는 수많은 이별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삶을 경환, 지수, 현기, 소리, 해미 각 인물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한 사람의 시선만 따라갔다면 

해미의 삶을 중심으로 한 전쟁과 사랑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만,

 각각의 인물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들 모두에게 저마다의 상실과 후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각자가 바라보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를 단순히 가해자나 피해자로 규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특히 해미의 삶을 바라보면서 

당시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부터 임신과 출산까지

 자신의 의지보다는 가족과 남편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많았고, 

해미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 역시 단순히 개인의 선택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딸인 소리의 시점에서 바라본 엄마 역시 이러한 시대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 명의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해미의 삶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면 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많은 순간이 후회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사람을 선택하지 못했고, 가족을 잃었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감당해야 했던 삶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결말 역시 밝지만은 않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나니

 제목 속 ‘떠남’이라는 단어가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해미가 자주 하는 ‘운이 좋아서’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해미의 엄마 역시 ‘운이 좋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처음에는 정말 자신들에게 운이 좋았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고 나니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살아온 삶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들려주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실제로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그 모든 것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운이 좋다’는 말이 오히려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네가 나를 떠나면》은 전쟁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 가족의 이야기이고,

 그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전쟁은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내기도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에도 오랫동안 상실과 후회를 남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떠남’은 누군가가 사라지는 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다. 

떠난 사람을 남겨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까지 포함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해미와 엄마가 반복했던 ‘운이 좋다’라는 말 역시

 결국 떠나간 사람들과 남겨진 삶을 어떻게든 견뎌내기 위한 그들만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알고 나니 이 작품이 더욱 애잔하고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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